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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정신을 기리며 광주 지역은 삼국시대 이래로 지리상 요충지였으며 한양의 군사적 요지로 1595년(선조 28)에 현재와 같은 성곽이 축조되었고, 1621년에 대대적인 계축공사가 있은 뒤 1626년(인조 4년)에 광주 유수의 치소와 마을이 성안으로 이전되었다. 이처럼 광주유수의 치소가 이전되면서 남한산성은 천주교 박해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고, 박해때마다 여러 곳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으로 끌려와 순교함으로써 잊을 수 없는 '치명 터'가 되었다. 이미 최초의 박해인 신해박해(1791)때부터 신자들이 남한산성에 투옥되었다는 전승이 내오며고 있으며, 신유박해(1801년) 때에는 이곳에서 최초로 순교자가 탄생하였다. 이어 개해박해(1839년)와 병인박해(1866년)에 이르기까지 약 300여명에 달하는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하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행적과 성명을 알 수 있는 순교자들의 수는 극히 적다. 이에 순교자 현양비를 세워 후손들에게 순교정신을 전하고자 이 비를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