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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독립유공자 정제신 선생 묘 - 광주 상수산 만석동 정제신(1883~1928) 선생은 일제 강점기하에서 이 고장의 3.1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로서 자는 준백 본관은 광주이다. 선생은 조선 말기 고종 20년(1883) 4월 23일 광주군 오포면 추자리에서 동현공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일찌기 향리에서 한학을 수학하며 유업을 닦았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무력으로 침략하고 강압적인 식민지 무단정치를 감행하자 선생은 크게 울분을 느끼고 점차 항일 민족독립사상을 간직하게 되었다. 마침내 1919년 거족적인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선생은 이에 적극 참여하여 관내 동지 40여명이 모인 가운데 그 선봉적 역할을 다하였다. 선생이 이끄는 시위대는 오포면 사무소의 소재지인 고산리에서부터 광주군청 소재지까지 횃불을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도중에 시위 군중은 어느덧 1천여명으로 불어나 읍내 일대는 인산인해를 이루어 만세소리가 처지를 진동케 했으나 급파된 일본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강제해산 되었다. 그후 선생은 오포면 관내의 주동자로 일경에게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당하고 1년간의 체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에도 선생의 애국적인 항일정신은 변함이 없어 지하비밀 민족운동을 계획 암약하다가 일경에게 발각 다시 체포되어 모진 악형을 받았다. 얼마 뒤 석방되었으나 선생에 대한 일경의 감시는 더욱 심해져 지유로운 행동은 물론 훈학조차 못하게 되어 생계마저 막연하게 되었다. 선생은 건강마저 악화된 가운데 일제에 대한 울분과 증오 끝에 마침내 1928년 5월 31일 자결하니 향년 46세였다. 국가에서는 뒤늦게나마 애국지사로서 활약했던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2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누구나 이곳을 경허하게 가꾸어 영원히 보존해야 할 것입니다. 1993년 2월 일 광주군수, 광주경철서장, 광주문화원장. 유족 : 정호림. 감수인 경기대학교 사학과 교수 문학박사 최홍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