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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률 투사. 1873년 함경남도 북청군 이곡면 초리에서 출생, 1919년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단에 가입 대동신보를 발간 암약하다 당시 왜놈들이 의친왕을 암살계획한다는 정보를 입수 상해임시정부로 피신시키기 위하여 동행하다. 동년 11월 만주 안동역에서 체포 압송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다. 1920년 12월 7일 징역 7년형을 받고 복역 만기 출소하다. 출옥 후 강원도 양구군 동면 원당리에 은거 사설서당을 설립 독립정신을 함양케하는 후진양성에 진력하다. 1943년(76세) 운명하다. 동리의 야산에 안장되었으나 후손이 없어 종친회에서 매년 시제를 올리고 있다. 1983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국장 등을 추서받다. 동민수 투사. 1872년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면 지명동에서 출생. 1919년 3월 15일 하가면 소재지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사건에 가담 선두에서 시위주도하다 왜헌의 총탄을 받고 운명 1991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국장등 추서받다. 동풍신 열사. 1904년 함격북도 명천군 하가면 지명동에서 출생. 1919년 화대동 독립만세사건에 부친(동민수)이 총격에 운명하자 친일분자 및 면사무소를 불지르다 체포되어 함흥형무소, 서대문형무소 등에서 고문을 받아 옥사하다. 당시 17세의 어린 나이였다. 1983년 8월 30일 대통령표창과 1991년8월 15일 건국훈장 애국장 등 추서받다. 동석기 투사. 1881년 함경남도 북청군 니곡면 초리 상함전에서 출생. 1919년 3월 1일 목사로서 서울파고다공원 독립선언식에 참가 운집군중에게 선언문을 살포 만세고창을 선동하다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다. 1919년 10월 6일 징역 7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다. 동주원 투사. 1896년 함경북도 북청군 이곡면 초리 하함전에서 출생. 1919년 3월 1일 경성의전재학 중 파고다공원 독립문선언식에 참가 운집 군중에게 선언문을 살포 만세를 고창 주도하다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1919년 11월 6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고 출옥 후 중국으로 망명 동명옥 투사. 함경남도 단천군 단천읍 용현리 출신. 1919년 3월 10일 단천천주교인 독립선포식에 참가 만세고창 주도하다 함흥형무소에 수감 실형선고을 받음 동상엽 투사. 1898년 단신 러시아로 이주 어업으로 재산을 축적 당시 연해주 지방을 근거로 활약하든 독립운동가 이범석 장군에 군자금을 조달하는 등 활발히 독립운동에 가담. 그 무렵 고국에 있는 가족들까지 요시찰인으로 고통을 안겨줄 정도였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