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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군 자둔면 금오리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천도교 양주교구장으로 이곳의 3·1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1916년부터 천도교 의정부 교구장으로 있으면서 천도교당내에 야학당을 설치하고 농촌 청소년과 부녀자를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치는 한편 생도들에게 배일사상을 고취하여 왔다. 1919년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자 3월 15일 그의 고향 자둔면 금오리에서 이윤의와 함께 수백 명의 시위군중을 이끌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의정부로 진출하려다가 일경에 저지되었다. 그후에도 1923년 11월 27일 금오청년회와 부인회를 조직하여 농촌계몽운동과 성미운동에 앞장서서 부락갱생·부업장려 등 농촌진흥을 위하여 활동하였고, 1936년 8월 14일에는 멸왜기도와 특별모금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1938년 4월 황해도 신천에서 열렸던 천도교 전국교구장대표 특별기도회에 참석하였다가 일경에 피체되었는데, 일제의 혹독한 고문을 받은 후 4월 25일 신천 경찰서원 2명에게 이끌려서 귀가하였고 고문의 여독으로 1939년 5월 2일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