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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구 한 말인 1884년 9월 월곶면 개곡리에서 학사공(繼子楨子)의 17세 후손으로 태어나시어 통진의 창신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3년간 봉직하셨으며, 이후 교육시설이 불모지인 옹진군 덕적도에 사재를 출연하여 명덕학교를 설립하시어 8년간 봉직하셨다. 선생은 일제에 항거하며 민족 해방을 노심초사 계책하시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 공원 독립선언식에 지역 대표로 참가한 후 김포시 월곶면 등지에서 시민들과 같이 독립만세를 시창하고 시위행진을 주도 하시며 일본에 저항하셨다. 그해 5월 일본군에 검거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 되었으며 모진 고문 끝에 35세를 일기로 옥사하셨다. 현재 서대문 형무소 순국선열 현충사 내에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1991년 8월 15일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 되었다. 이에 우리 김포 종중에서는 선생의 높은 교육정신과 애국정신을 후대에 선양하기 위하여 선생의 공덕비를 세워 드립니다. 2016년 11월 09일 공덕비 건립추진 위원장 임종훈 부안임씨 밀직공파 종중회장 임종호 외 회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