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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근 선생은, 경기 강화(江華) 사람이다. 1919년 3월 18일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부내면(府內面)에서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를 등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때 주모자 색출시 서울로 피신하였다가 피체되었으나 일신상의 문제로 보석되었다. 그후 노령(露領) 해삼위 신한촌(海蔘威新韓村)에서 이동휘(李東輝)로부터 독립군양성을 위해 국내지원자를 모집하라는 지령을 받아 김현구(金鉉九)와 함께 여러명의 청년을 모집하여 입대시켰다. 또한 임정의 연통제(聯通制) 조직 및 대동단(大同團) 조직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20년 8월 만주광복군총영(滿洲光復軍總營)으로부터 미국의원단의 내한을 계기로 조선인의 독립의지를 알려주기 위하여 일제기관 등의 파괴용 폭탄과 육혈포 등을 결사대장 김영철(金榮喆)이 가지고 와서 유경근의 집에 보관케한 사실이 일경에게 탐지되어 피체되었다. 그리하여 고등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후 강화군(江華郡)에서 광명학교(光明學校)를 설립하고 청소년교육에 힘썼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