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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3.1독립운동 의거도 ■ 동래 범어사 학생의거(1919.3.18~19) : 3월 4일 범어사 출신 김법린과 김상헌은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부산으로 내려와 독립만세를 준비하였다. 3월 18일 시위를 전개하려는 이들은 친일파 오계운의 밀고로 중단하고 19일 희생을 각오하고 동래 시장통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 구포장터 의거(1919.3.29) :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 양봉근과 임봉래, 윤경, 류기호 등이 3월 29일 정오 구포장터에서 장꾼 1,000여 명과 독 립만세를 외치며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 명호시장(市場) 의거(1919.4.10) : 4월 9일 명지면에 있는 사립동명학교 교사 이진석은 양왕석과 태극기를 만들고 독립선언문을 등사해 4월 10일 김청천, 서갑순 등과 학생·군중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어 이진석이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1백여명의 군 중도 독립만세를 부르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 가덕진(加德鎭) 의거(1919.4.11) : 4월 11일 가덕도 유지 양흥석이 동지 최세권, 김동항과 독립만세를 외치며 가덕진 각 마을을 돌아다니자 주민들도 이에 합세해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 좌천(佐川)시장 의거(1919.4.8) : 기장군 교리의 김수용에게서 독립선언문을 입수한 오해환과 오진환, 신두성, 김윤희 등 청년들은 4월 8일 좌천장날 5~6백명의 농민들을 모아 태극기를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 일광(日光) 의거(1919.4.5) : 4월 5일 김도엽, 권철암, 구수암 등이 기장읍 장터에서 「조선독립만세」, 「조선독립단」이라고 크게 쓴 큰 기를 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소리높여 외쳤다. 이에 장꾼들이 합세하여 만세를 부르고 시위행진을 전개하였으며, 망건 장사를 하던 박영준도 의분을 억제할 수 없어 장꾼들을 선동하여 읍내를 돌면서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 기장(機張)읍 의거(1919.4.5) : 김수문이라는 마부(馬夫)가 동래에서 주워 온 독립선언서를 보고 독립의지를 느낀 김도엽, 권철암, 구수암 등 7인은 기장장날인 4월 5일 기장읍 장터로 나가 대한독립 만세를 연호하였다. 이에 시장은 삽시간에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로 변하였고, 군중들도 합세해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 일신여학교 의거(1919.3.11) : 3월 23일경 독립선언서가 비밀리에 서울에서 부산의 학생대표단에게 전해져 일신여학생들은 의거를 준비하였다. 3월 11일 오후 9시경 고등과 김응수, 송명진, 김반수 등 11명과 주경애·박시연 교사는 태극기를 손에 들고 좌천동 거리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 동래고보 장터의거(1919.3.13) : 동래고보 졸업생 곽상훈이 몰래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와 독립만세기, 광무황제의 독살을 폭로하는 「오왕약살(吾王藥殺)」 전단을 3월 13일 군청 앞 망미루에서 뿌렸다. 이에 주위에 모였던 수천명의 장꾼들도 일제히 독립만세를 부르고 합세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