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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실 혹은 주민에게 물어보려고 했지만, 추운 날씨에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다. 세창 백낙주 선생은 1919년 정주에서 3·1독립운동에 참가한 후 만주로 피신하여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7월에는 독립소대장으로서 흥경(興京)방면에서 봉천(奉天) 일본영사 일행을 사살하고 많은 금액을 획득하였으며, 또한 일본군의 경신(庚申) 만주대학살 후에 독립군의 근거지가 동요되었을 때에는 권덕근(權德根)등과 함께 지방 수복공작에 착수하여 관전(寬甸), 환인(桓仁), 통화(通化), 유하(柳河), 흥경(興京), 해룡(海龍)현을 수복하는 한편 보민회(保民會)를 숙청하였다. 1923년 8월에는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조직되자 법무부장 현정경(玄正卿)과 함께 법무부원으로 활약하였다. 1927년에는 일본관헌의 추적을 받게 되어 서자의(徐子儀)등과 함께 몽고의 도남현(桃南縣)으로 피신하였다가 귀만하였으나, 1928년 9월 28일 봉천주재 일본영사관 대천(大川)순사부장의 직접지휘로 그의 집을 포위하고 체포하려하자 동영사관 순포(巡捕) 왕추신(王樞臣)에게 중상을 입히고 피신하였다. 그러나 그후 흥경현 무순방면에서 활동중 변절자의 밀고로 일경에게 체포되어 신의주로 압송되었다. 그는 결국 1932년 3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조국 광복으로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