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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후인 애국지사 동산 김형기선생 추모비 포악한 왜적이 우리 강토를 강점하여 국토를 유린하며 식민통치를 자행한지 십여년 각계각층의 민족 지도자와 재경 유학생이 주축이 되어 대한 독립의 횃불을 높이 드니 청사에 길이 빛날 3.1 독립운동이다. 이 3.1 운동을 주도하신 최고 지도자의 한분인 동산(東山) 김형기(金炯機)선생이시니 이곳 김녕 김씨 (金寧金氏)유두(柳頭) 문중 유헌재(柳軒齋) 앞뜰에 청석을 세워 선생의 위대한 행적의 일단을 새겨두고 우러러 보고자 한다. 선생의 본관은 김녕(金寧) 이며 호는 동산(東山) 으로 대보공(大輔公)휘(諱)알지(閼智)를 시조로 하며 고려조(高麗朝)에 금주군(金州君)을 훈봉 받으신 휘(諱)시흥(試興)이신 문열공(文烈公)이 관조(寬祖)이시다. 문열공(文烈公)의 9세손으로 세조 조(世祖 朝)에 단종(端宗) 복위를 주도하고 순절하신 사육신 충의공(忠毅公)휘(諱) 문기(文起) 백촌(白村) 선생의 현손(玄孫)으로 정란(靖亂)의 박해를 피하여 부산(釜山)의 유두(柳頭)에 이거(移居)하신 유헌(柳軒) 휘(諱)영필(永弼)공의 13세손이다. 선생께서는 서기1896년8월9일 선조의 세거지인 당시 동래군 사상면 유두리 231번지2에서출생하였으며 충주 지씨 (池氏)부염(富廉)님을 부인으로 맞아 슬하에 장남 재진(在珍)등 2남6녀를 두셨으며 효심이 지극 하셨고 형제간의 우애 또한 자별하신 분이셨다. 선생이 경성의전(京城醫專)4학년에 재학중 당시 유일한 학생조직인 재경 유학생회 회장으로계시면서 1919년 1월 민족대표 33인으 한분이신 박희도(朴熙道)이갑성(李甲成)과 함께 협심하여 해외독립운동에 대한 정세와 민족자결주의 사상을 고취 시키면서 만세시위운동에 대한 계획을 재 경성의학 전문학교 대표인 주종선(朱鍾宣)이공후(李公厚)김문벽(金文壁) 등과 같이수립하셨다. 동월 28일 정동교회에서 강기덕(姜基德)한창식(韓昌植)과 회합하여" 조선 독립선언서"를 지역 대표 및 학교 대표에게 배포함으로써 서울은 물론 전국 방방곡곡에 조선 독립만세 소리가 노도와 같이 번지게 하였으니 실로 독립운동사에 길이 빛날 위업을 이루셨다. 3.1일 탑동 파고다 공원 앞에 모인 수천의 시위군중 앞에서 민족대표를 대신하여 학생 대표로 선생께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셨다고 전하나 확인 할 길이 없어 더 없이 애석한일이다. 이 날의 시위로 주동자인 선생을 비롯하여 학생대표37명이 일경에 체포되어 잔혹한 고문을 받고 동년 11월 6일 주동자 중 최고형을 받아 옥고를 치르셨다. 위의 사실을 종합해 보면 3.1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한 핵심 인물 중 한분이 재경 유학생회 회장 동산(東山)김형기(金炯機)선생님을 쉽게 알수있다. 형기를 마친 선생께서는 1922년 경성의전을 졸업하시고 동래 울산 기장 등지에서 공의로 활약하시면서 이곳 출신의 뜻 있는 분과 교우 관계를 맺으며 독립 운동의 의지를 다졌다. 1932년 경 부산 영주동과 대청동에서 동산의원(東山醫院)을 개원한 후 광복이 되기까지 부산지방 독립지사를 적극 도우며 독지가의 모금과 사재를 보태어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니 후일 부산을 중심한 경남 일원 독립운동 자금이 영주동의 동산병원으로부터 나왔음이 확인 되었으며 당시의 상황으로는 실로 목숨을 던진 애국 충정이었다 드디어 1945년 8월15일 조국 광복이 찾아오자 선생은 미국 군정청 경상남도 지사의 고문을 역임하면서 해외 귀순동포 환영 위원장을 맡아 사재를 털어 귀환동포를 따뜻이 보살피며 구호에 전념하셨다. 오호라 불행하게도 광복후의 어지러운 정국은 사상과 민족의 분열을 가져왔고 치안을 관장한 친일 잔당은 저들의 호신채으로 위대한 독립운동가이시며 민족주의자이신 동산선생을 공산주의자라는 오명으로 희생시키니 실로 하늘을 우러러 통탄할 일이로다. 다행이 선생이 가신지 40 성상이 지난 1990년 천신만고 끝에 당시 재판 기록으로 항일운동의 사실이 입증되어 정부로 부터 건국훈장을 추서 받으시어 지난날의 오욕이 깨끗하게 신원(伸寃)되셨기에 광복회(光復會)와 낙동문화원(落東文化院)이 선창하고 김녕김씨 충의공파 유두문중 (金寧金氏忠毅公派柳頭門中)이 한 뜻이 되어 추모비를 세워 위훈에 보답하고 후세에 귀감으로 삼고자 조그마한 돌에 새기는바이다. 나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죽는것은 조금도 두렵지않다 평소 동산(東山)선생의 말씀을 함께 새겨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영원히 남게하리라. 1998년 4월 6일 대한민국광복회 회장 권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