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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촌(松村) 지석영(池錫永) 선생 공덕비 송촌 지석영선생은 1855년 5월 1일 서울에서 태어나셨다. 22세때 종두귀감(種痘龜鑑)이란 책을 읽고 종두제민(種痘濟民)의 뜻을 품어 이 곳 부산에 있던 제생원에 들어가 종두법을 배워 우리나라 최초의 우두를 실시하였다. 28세때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으로 물러나 우두신설(牛痘新說)을 저술하였고 다시 사헌부장령이 되었으나 무당들의 모함으로 강진 신지도로 귀양갔다가 4년만에 풀려나 서울에서 우두보영당(牛痘保嬰堂)을 개설하여 자선종두를 실하고 다시 형조참의에 복직되고 한성부윤, 진주목사 등을 거쳐 1895년에 동래부사, 동래관찰사가 되어 우두시술에 힘쓰는 한편 부산항재판소 판사를 겸하여 일본인들의 밀수를 근절시키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을미사변 뒤 다시 모함을 받아 황해도의 초도에 귀양갔다가 풀려났으나 벼슬을 사직하고 1900년에 경성의학교(현 서울의대)를 설립하였고 해부학(解剖學)을 발간하였다. 한글보급에도 힘써 자전석요(字典釋要)를 간행하였고 보영산(保靈散)과 영효산(靈効散)을 제조하여 수많은 생명을 구하였다. 1935년 2월 1일, 81세로 돌아가시고 훈5등팔괘장(勳五等八掛章)과 태극장훈장(太極章勳章)을 받으셨다. 이 공덕비는 선생의 공덕을 기리어 선생이 인정을 베풀던 이곳에 지씨일문(池氏一門)이 합력하여 1988년 4월 2일에 세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