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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역사문화 순례길 월봉 한기악 한기악(1898~1941). 호는 월봉 1898년 원주 부론에서 태어나서 일본 유학생 시절이던 1919년, 도쿄에서 2.8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면서,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져 나간 3.1독립만세운동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 이승복과 함께 중국 만주로 망명한 뒤에도 독립운동을 계속해 상해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고 초대 의정원으로 활동하다 1920년대 초 귀국한 뒤 조선노동공제회를 조직하고 기관지로 '공제'를 발간하면서 한국청년의 진로등을 제시하였다. 1924년 7월 동아일보사의 청치부장과 편집국장직을 맡아 필봉으로 동을 격려, 고무해 일제의 탄압 일변도의 만행을 규탄, 성토하였다. 동시에 조선물산장려회 이사로 선출되어 활약하였다. 1925년 '시대일보' 편집국장을 지냈다. 이해에 월간 '개벽' 잡지가 항일민족기가로 인해 조선총독부로부터 정간처분을 당하였다. 언론 동지인 송진우, 민태원과 같이 사이토 총독을 찾아가 항변 해금시키는데 성공하였다. 1927년 2월 신채호 선생과 신간회의 발기인으로 참가, 중앙위원에 선출되었다. 1928년부터 4년간 조선일보사의 편집국장으로 재직하면서 필봉으로 민족계몽운동과 항일투쟁을 하였다. 1935년부터 중앙보통학교에서 일재 교육에 헌신하면서 이 학교의 감사로도 재직하였다. 1983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추모비 홍호리 76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