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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론면 항일독립만세운동사 1910년 일제에 의한 한일합병으로 국권을 상실한 이후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 선언서의 발표를 계기로 전 민족적인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부론면은 삼엄한 시국상황 속에서도 1919년 3월 27일 노림리의 노림의숙(魯林義熟) 교사 홍남표(洪南杓) 어수갑(魚秀甲)의 영향을 받아 한범우.한돈우.한민우.한태우.김성수.정현기.김일수 등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법천리에서는 4월 8일 표광천.지천복과 수십 명의 주민이 참가하여 응봉산에서 봉화시위를 거행하였다. 또한 이 무렵 배재학당 학생이었던 이근성이 이근원.정우진과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였으나 사전에 체포되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뒤이어 4월 11일에는 손곡리의 김복기.정완용.이재관.이은교 등이 거사를 결의하고 주민 수십 명을 규합하여 봉화시위를 전개했다. 부론면민들의 연속적인 만세운동으로 많은 참여자들이 일제에 의해 피체되어 탄압 받았지만 자주독립을 향한 그들의 의지는 강건했다. 기미년(1919)에 부론면민들이 보여준 자주독립을 향한 투쟁과 의지 표출은 항일독립만세운동이 원주권 전역으로 확산되는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