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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시대적으로 춥고 배고픈 그리고 자유마저 빼앗긴 일제 통치하의 억압된 세파속에서 나라 잃은 설음을 금할 길 없는 세상을 살으셨다. 각지에서 독립을 위한 독립선언서가 배부되고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었을때 공이 살고 계신 횡성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차로 기미년 2월 27일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2차로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이 있기까지 공은 동분서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산을 넘고 강을 건느며 굶주린 배를 움켜집으며 사랑하는 조국의 자유독립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으셨던 어른이시다. 더구나 횡성의 3.1운동은 천도교회에 의해 추진되었던 바 공도 천도교인이셨던 것이다. 공은 최종하 윤태환 탁영재 전성수 최동수 등 십수명과 함께 추진 그 활약이 다대한 것으로 횡성과 3.1운동이란 책에 수록돼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특히 공이 서거하신 3월 1일 만세운동은 13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그 의기는 대단하였을 것이리라. 나라 잃은 백성들은 일본군의 군화발과 말굽에 밟힌지 수십년 동안 고생과 역경을 이겨내며 참아왔던 백의민족의 운동이야말로 조국없는 백성은 없고 백성없는 나라는 없다는 말과 같이 징용을 끌려가기 위함이 아니라 잃었던 나라을 찾기 위함이요 일제를 몰아내기 위한 한맺힌 투쟁이였다. 대한독립만세! 조선독립만세! 공은 뜻을 다 이루지 못한채 비명에 가셨지만 후손들의 평온한 삶을 영위케하기 위해 몸을 던지셨던 것이다. 그르기에 오늘 우리 후손들은 이렇게 서광하지 않은가? 길이 후손에 물려줄 기상이요 영원한 빛이요 만대에 별이 되시리라! 고이 평안하옵소서. 공의 묘는 백자동에서 서기 1989년 11월 1일 바리골로 이장 건좌 서기 1989년 11월 1일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