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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一운동기념비(3.1운동기념비) 1919년의 3.1만세는 한일합방에 항거하는 통분한 함성이요. 자유와 독립을 되찾으려는 비참한 절규요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국권을 유지 계승하려는 당당한 주장이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구별이 없이 한 덩어리로 뭉쳐진 거대한 불길의 폭발이었다. 그러므로 삽시간에 삼천리 방방곡곡에 번져 하늘이 뻐개지고 땅이 흔들릴 듯한 맹렬한 기세였다. 이러한 정당한 평화적인 궐기에 대하여 왜적의 탄압은 어떠하였던가. 잔인하고 악독한 살육과 형벌이었다. 이해 3월 27일 우리 횡성에서는 수 천 군민이 읍내장터에 모여 장렬한 태극기의 물결을 이루었고 잇따라 4월 12일까지 사이에 각 면마다 독립만세를 소리높이 부르던 중 하영현 강달회 전한국 강승문 의사는 현장에서 강만형 의사는 옥중에서 왜적의 총칼 아래 순국의 영령이 되고 말았다. 이 숭고한 3.1정신을 이어받아 창간한 동아일보사는 유서깊은 이 곳에 이 기념비를 세워 그 거룩한 정신을 만대의 후세까지 길이 받들어 드높이려 한다. 1972년 8월 15일 동아일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