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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들은 서울 유림들은 일제이 이러한 간계를 분쇄하기 위하여 파리평 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해 야겠다는 움직임이 여기 저기서 싹트고 있었다. 이 무렵 면우 곽종석의 문인 윤충하(尹忠夏)는 서울에서 이러한 움직임을 보고 1919년 2월 19일 거창으로 곽종석을 찾아 갔다. 곽종석은 을사늑약과 경술국치 때에는 서울로 와서 상소로써 과감한 항쟁을 할 뿐 아니라 은퇴생활을 하면서도 항시 해외 의 망명지사들과 은밀한 연락을 갖고 한국의 독립은 오직 국제정의에 호소해야 된다고 주장 한 바 있었다. 곽종석을 찾은 윤충하는 파리평화회의에 대한 내용과 전망 그리고 독립불원서 문제로 인한 서울 유림들의 동태를 자세히 보고하면서 이즈음에 파리평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하여 국제여론에 호소하는 것이 우 리가 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 절 호의 기회라는 것과 또 곽종석이 이 운동에 대표가 되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였다. 그리고 실행 방법은 고종의 인산이 3월 1일로 공포되었으니 그때를 이용하면 전국 유림들 의 서명운동도 용이하다는 사실 도 아울러 논의 하였다. 곽종석은 즉석에서 쾌락하면서 몸이 자유롭지 못하여 자기를 대표할 청년을 서울에 파견하 여 상의하게 하겠다고 윤충하를 돌려 보냈다. 그날 저녁에 서울에 있다는 김창규(金昌圭)가 찾아와서 곽종석의 면회를 청하 였는데 윤충하와 꼭 같은 의견 이었다. 곽종석은 자기의 조카 곽윤(郭奫)으로 하여금 자기의 의견을 전달하도록 하고 격려 하여 돌려 보냈다. 그뒤 곽윤과 김황(金榥)을 서울에 보내서 다방면으로 정세를 알아 보고 윤충하와 상의하여 추진하도록 지시하였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장서운동의 출발동기는 (가) 민족자결주의의 신조류 (나) 일제의 사주를 받은 유림대표의 ‘독립불원서’ 에 대한 반박의 표시 (다) 고종황제 급서에 대한 국민의 충격 등인데 그 과정이 3·1운동과 다른 점은 3·1운동은 국민봉기 로써 대내 투쟁을 제1차적인 목적으로 하는 반면 장서운동은 유림의 총의를 비밀리에 망라 하고 그것으로 국제무대에서 공 개적으로 투쟁하려는데 그 차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유림측이 설명하는 논리이고 실제로는 3·1운동에 소외되었던 반발의식의 작용 도 없지 않았다. 2. 파리장서 운동의 착수 처음 이 운동을 일으켰을 때는 장서란 말은 없었다. 유림간에 서로 연락하는 용어(用語)는 ‘독립청원서’였다. 그뒤 이 거사가 발각되어 일제측에서 취조할 때 본 사건의 이름을 ‘유림단사건’이라 붙었고 해방후에는 ‘파리장서’라고 호 칭하였으니 즉 파리에 보낸 긴 편지라는 뜻에서 그렇게 불러진 것이다. 이 운동은 이미 서 술된 바 윤충하·곽윤·김황 등이 곽종석의 지시에 따라 활동이 시작되었고 또 그와는 별도로 성대영·김창숙과의 서면 연락에 서 3·1운동을 기점으로 파리장 서 계획을 세우고 활동을 준비하던 중 김황·곽윤 등을 만나 합류하게 됨으로써 본 운동의 완성을 보게 되었던 것인데 김 창숙과 성태영과의 관계 동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월 19일 성주(星州)에 있는 김창숙에게 서울로부터 성태영의 편지가 전해왔다. 그 내용은 고종황제 국장일을 기하여 대 사건이 책동되고 있으니 빨리 상경하라는 것이었다. 편지를 받아 본 김창숙은 모친의 병환 으로 즉시 상경하지 못하고 25 일에야 서울에 올라와서 즉시 성태영을 만나니 각 종교대표들은 3월 1일 국장일을 기하여 독립선언서를 발표할 만반의 준 비를 하고 유림대표 김창숙을 독립선언서에 연서할 것을 고대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선언서 의 인쇄가 완료되어 서명의 기 회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쉽다고 말하였다. 마침내 3월 1일은 닥쳐 왔다. 김창숙은 성태영·김정호(金丁鎬)와 함께 탑동공원에서 독립선 언문 낭독을 듣고 군종들과 함 께 ‘대한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였던 울분이 한꺼번에 터져 나 왔다. 그렇게도 우렁차던 만세 소리는 눈물과 울음으로 변하고 말았다. 김창숙은 성대영·김정호와 밤을 새워가며 실천방법을 구체적으로 검토하였다. 즉 독립청원 서의 기초, 대표의 추대, 모금의 방법, 전국 유림의 동원 등 치밀한 계획이 마련되었다. 김창숙도 곽종석의 문인인 만큼 곽윤을 통하여 서울에 온 김황·윤충하 등과 만나 합류하기로 결론짓고 일을 추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