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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강계(江界) 사람이다. 1919년 11월 중국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국내에 있는 유력 재산가, 학교 및 종교계 등을 조사하여 독립운동의 자료로 삼기 위해 조직한 임정조사원의 평북 강계지역 책임자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이듬해인 1920년 2월에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이던 안창호(安昌浩)의 비서로 활약하였고, 동년 2월 22일 상해 프랑스 조계(租界)내에서 조직된 흥사단(興士團) 원동지부(遠東支部)에 가입하였고, 유기준(劉基俊)을 흥사단에 가입시키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1925년 12월부터 1931년 2월 22일에 이르는 기간 동안 안창호의 주창에 의해 조직된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1931년 하게 수양대회를 개최할 때 김윤경(金允經)·김선량(金善亮) 등과 함께 동우회 강령의 선전방안과 장래를 위하여 청년들로 구성된 청년개척군(靑年開拓軍)의 조직을 협의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