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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의병은 크게 3번에 걸처 일어났었다. 다음주 부터는 이 의병 독립유공자를 탐방할 예정이다. 1. 을미의병 : 1894년의 동학농민운동의 세력을 기반으로 하여 1895년 처음으로 의병이 일어났다. 명성황후가 일본의 낭인들에게 시해 당한 것과 단발령 시행에 항거하여 충북 제천에서 발생하였다. 의병장은 유인석과 이소응이 대표적이며 이들은 유학자를 중심으로 일반 농민들까지 그 구성이 다양하였다. 지방의 주요 도시를 공략하여 친일 관리와 일본인을 처단하였다. 2. 을사의병 : 1905년에 일본의 강압에 의한 을사조약이 맺어지자 최익현, 민종식, 신돌석 등이 주축이 되어 을사의병이 일어났다. 을사의병은 평민 출신의 의병장이 나왔고, 을사조약의 파기와 친일 정부 관료들의 축출을 주장하였다. 을미의병에 비해 더욱 거센 의병이었으나, 신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3. 정미의병 : 일제는 1907년 6월 헤이그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퇴위시키고 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뒤,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시켰다. 해산군인들은 해산당일 시위대 제1연대 제1대대장 박승환의 자결을 계기로 서울 ·원주 ·강화 진위대 등지에서 무장봉기를 하는 한편, 무기를 가지고 각지의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후기의병은 해산군인의 참여로 무기와 병력이 크게 강화되었고 또 전술의 발전도 가져왔다. 일본군이 지형에 어두운 점을 이용하여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벌인 게릴라전술은 일본군의 우세한 화력을 무력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