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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민(金升旼)는 1906년에는 최익현(崔益鉉) 등과 함께 의병운동에 관여하였으며 1906년 5월 18일에는 오적토벌관계로 일본군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1909년에는 해아밀사사건(海牙密使事件)으로 서울 경무청에 수감되기도 하였다. 1920년에는 봉천성(奉天省) 안도현(安圖縣)에서 홍두식(洪斗植)과 함께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광복단(光復團)을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하였으며, 1923년 가을에는 흥업단(興業團)·군비단(軍備團)의 3개 단체를 통합하여 광정단(匡正團)으로 확대 개편하였다. 1925년에는 만주 봉천성 안도현에서 대동회(大同會)를 조직하여 회장으로 활약하다가 간도 일영사관 경찰에게 체포되어 다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