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page


412page

김진성(金振聲, 이명 金弼堡, 金禎萬, 1892~1968)은 평남 덕천(德川) 사람이다. 1919년 초에 하얼빈(哈爾濱)의 노군사령관(露軍司令官) 호리왓트대장과 연락하여 해삼위(海蔘威)를 중심으로 동지 유동열(柳東說)·신영삼(申榮三) 등과 같이 한인 2세 8백여명을 모집하여 동청철도수비대(東淸鐵道守備隊)에 편입시켜 활동하게 하였다. 또한 그는 하얼빈 러시아군의 용병으로서 오성만(吳成萬)·김창연(金昌連)·송일훈(宋一勳)·이승무(李昇武) 등과 함께 의용병(義勇兵)을 조직하여 실전연구를 하기도 하였다. 한편 임시정부와도 연락을 취하였는데 이때 일경에 체포되어 서울에 압송되었으나 유동열·양기탁(梁起鐸) 등의 석방운동으로 2개월만에 출옥하였다. 그후 전남 광양(光陽)지방의 지주들로부터 군자금 7천원을 모금하여 양기탁에게 전달하기도 하였으며, 미국의원단이 내한했을 때에는 격문 천여매를 만들어 배포하고자 하였다. 1920년 9월에는 김교우(金敎雨)·김한규(金漢奎) 등과 함께 고산(高山)의 부호 고갑준을 설득하여 현금 9,600원을 받아 상경하였다가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어 징역 10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한 뒤에도 계속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