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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자기 연배에서 조선사를 논하고 쓸만한 사람이 꼭 두 사람 있는데 천분이 탁월한 신채호와 연구가 독실한 문일평이라 했다. 선생은 중와일보의 논설기자로 재직하셨으며 타계하시기까지 7년 동안 조선일보 편집고문으로써 붓을 놓지 않았는데 절필은 돌아가시기 보름 전에 쓰시고 3월 11자 조선일보에 실린 「訥齋集讀後感(눌제집독후감)」이다. 평생 선생이 계몽해온 것이 조선심이요 이를 지탱하고져 골몰해 온 것이 조선학이다. 역사만이 아니라 자연 예술 풍속 생업 의식주 감정 심정 등 조선심이 스며있는 것이면 모두가 선생이 탐구하고 쓰는 대상이 되었다. 선생은 한국의 존재가치를 추구하고 알알이 구슬처럼 닦아내는 한국학의 선구자로 국제화가 진행이 될수록 선견적 업적이 기리 각광을 받을 것이다. 호암의 조선심이 「삼국사기」나 「고려사」에 박혀있다는 말인가. 그가 사랑했던 압록강에 묻혀있다는 말인가. 삼각산 바위에 새겨져있다는 말인가. 부음을 듣고 통곡했던 벽초의 조사로 이 명을 마무린다. 유명을 달리하신 지 58년 만에 아들 딸 손자 손녀들이 흠모의 정을 이 돌그릇에 소복이 담아 받치오니 기리 기리 명복을 거름이게 하옵소서. 1997년 월 일 후학 이규태 근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