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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 - <정환직·용기 부자의 주요 활동지역> 각 주 1) 배용일(裵勇一) : <산남의진고(山南義陣考)>(《논문집(論文集)》6, 포항실업전문대학 , 1982), p.17. 2) 정환직은 시종관으로 있던 1899년 11월 20일 밤 종묘화재시(宗廟火災時) 광무황제를 업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 일이 있다. 이 사건이 있은 뒤 황제는 언제나 그를 신임했다 한다. (송상도(宋相燾) : 《기려수필(騎驢隨筆)》, 1955, p. 140 참조) 3) 송상도(宋相燾) : 《기려수필(騎驢隨筆)》, pp.139∼140. 4) 위와 같음. 배용일(裵勇一) : 앞의 논문, p.4 참조. 5) 을사오조약 늑결 직후 정환직이 광무황제를 배알하니 황제는 그에게 "화천(和泉)의 물을 아는가? 이것이 짐의 바라는 바 짐망(朕望)이다."라고 하여 '짐망'(朕望) 두 자의 밀조를 내 렸다 한다. '화천(和泉)의 물'은 옛날 중국의 제경공(齊景公)이 제후국의 군사들에게 포위되 어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차우장(車右將) 봉축부(逢丑父)가 기지(奇智)를 써서 화를 면 하게 한 고사에서 유래하는 말이다. (<산남의진사(山南義陣史)>, 《독립운동사자료집 3》 , 보훈처, 1971, p.381) 6) 《독립운동사(獨立運動史) 1》(보훈처, 1970), pp.578∼579. 7) 《독립운동사(獨立運動史) 1》, pp.580∼581 참조. 8) 송상도(宋相燾) : 《기려수필(騎驢隨筆)》, p.142. 신망심불변(身亡心不變) 의중사유경(義重死猶輕) 후사빙수탁(後事憑誰託) 무언좌오경(無言坐五更) 9) 김의환(金義煥) : 《항일의병장열전(抗日義兵將列傳)》(박영사(博英社), 1975), pp.100∼ 101. 10) 산남의진유사간행위원회(山南義陣遺史刊行委員會) 편(編) : 《산남의진유사(山南義陣遺 史)》(1970), pp.83∼840, 《독립운동사(獨立運動史) 1》, pp.351∼353, 배용일(裵勇一) : 앞의 논문, p.27 참조. 11) 이순구 편 : <산남의진사(山南義陣史)>《독립운동사자료집(獨立運動史資料集) 3》, (보 훈처, 1971), pp.384∼385 : 《독립운동사(獨立運動史) 1》(보훈처, 1970) pp.388∼389 참 조. 12) 《독립운동사(獨立運動史) 1》, pp.389∼390. 13) 배용일(裵勇一) : 앞의 논문, p.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