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page

- 68 - 성 명 부 서 비 고 사 항 김상태(金尙台) 중 군 장 영춘(永春) 남천(南川) 출신으로 1911년 봄 일제에게 피체. 대구 감옥에서 단식 순국함. 본관은 삼척(三陟). 이만원(李萬源) 도총독장(都總督 將) 청풍(淸風) 출신으로 1909년 1월 15일(음)에 순종을 배알하고자 상경했다가 일제에게 피체됨. 종신금고형을 선고받았으나 임금의 특사로 석방됨. 그뒤 본가에서 사 망. 본관은 진성(眞城). 백남규(白南奎) 우 성 봉 후에 도선봉(都先鋒)이 됨. 충주에 거주. 본관은 수원 (水原). 하한서(河漢瑞) 도 선 봉 단양 거주. 청풍 작성(鵲城)전투에서 전사. 본관은 진주 (晋州). 원래는 제천 출신이다. 정연철(鄭淵畜) 후 군 장제천 거주. 권용일(權用佾) 우군선봉 후에 도선봉(都先鋒)이 됨. 청풍 거주. 본관은 안동(安 東). 윤기영(尹基榮) 전 군 장원주 거주. 강릉(江陵)에서 사망. 본관은 파평(坡平). 신태원(申泰元) 후 군 장청풍 출신. 문경(聞慶)에서 전사. 본관은 평산(平山). 이중봉(李重鳳) 우 군 장 청풍 거주. 일제에게 붙잡혀 종신 유배형에 처해졌으나 특사로 사면된 뒤 귀가, 본가에서 사망. 이용로(李容魯) 좌 군 장  천보락(千普洛) 좌 익 장문경 거주. 본관은 영양(穎陽). 박갑주(朴甲胄) 후 선 봉원주(原州). 허 섭(許燮) 우 선 봉영춘 출신. 일제에게 투항. 변학기(邊鶴基) 우 군 장봉화 출신. 본관은 원주(原州). 이세영(李世榮) 좌 군 장제천 출신. 본관은 경주. 유시연(柳始然) 소 모 장안동 출신. 김운선(金雲先)중군선봉장원주 출신. 박우영(朴尤永) 소 모 장정선(旌善) 출신. 이창교(李昌敎)후군선봉장  최동백(崔東白)우군선봉장  주현삼(朱玄三) 수 문 장원주 출신. 영월에서 피체된 뒤 적을 꾸짖다 순국함. 유병선(劉秉先)도 령 장(都領將)원주 출신. 김영식(金永軾) 우 익 장영월 출신. 최용출(崔用出) 좌 익 장영월 출신. 설창해(薛昌海)영 솔 장(領率將)영월 출신. 김덕수(金德秀) 부 영 솔강서(江西) 출신. 정재덕(鄭在德) 교 련 관안동 출신. 안춘흥(安春興) 교 련 관충주 출신. 윤용구(尹容九)독 전 장(毒戰將)제천 출신. 니 무슨 여한이 있으랴. 너는 놀래지 말고 정신을 차려 동생과 함께 나 죽은 뒤 3일 안으로 박장(薄葬)토록 하라.17) 강년(康秊)은 양심이 격동함을 참을 수 없어 병신년(1896) 이래로 13년간에 두 번 의기 (義旗)를 들고 일어나 30여 회전에서 적추(賊酋) 백여 명을 참수하였다. (중략) 이 몸은 존 화양이(尊華攘夷)의 대의(大義)에 죽는 것이니, '하루를 더하더라도 그치는 것보다 낫다'(최 후까지 항일전을 펼친다는 의미임)는 것도 이제는 그만이 되었다. (중략) 동지들에게 바라는 것은 적세(賊勢)가 성하다 하여 본래의 뜻을 어기지 마시고 더욱 큰 의리로 매진하시어 광 명한 날을 기다리시라.18) 한편, 이강년이 피체된 뒤 중군장 김상태(金尙台)가 잔여 의병들을 규합하여 백남규 등과 더불어 영남, 호남 각지를 전전하며 한동안 항전을 계속, 이강년 의병부대의 명맥을 이어갔 으나, 끝내 그도 적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부(附)> 이강년 의병부대의 장임록(將任錄)을 아래에 첨부한다. 이들은 모두가 불굴의 항일의지로 이강년과 더불어 각지에서 혈전을 치른 인물들이다. 이강년 의병부대 장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