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page

- 52 - 각 주 1) 《의병전쟁사(義兵戰爭史)》(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1984), p.180. 2) 《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 1》(국사편찬위원회, 1966), pp.237∼23 8. 《독립운동사 1》(보훈처, 1970), pp.449∼450. 3) 성대경(成大慶) : <군대해산(軍隊解散)과 정미의병(丁未義兵)>(독립기념관 한국 독립운동사연구소 주최 제3회 독립운동사학술심포지움 발표문, 1989. 9. 5 ), p.6. 4) 《구한국관보(舊韓國官報)》(광무(光武)11년(年) 8월(月) 1일자(日字) 호외(號 外)). 위의 조칙은 필자가 축약(縮約) 해석한 것으로, 원문은 다음과 같다. "조왈(詔曰) 짐(朕)이 유(惟)컨대 국사다난(國事多難)한 시(時)를 치(値)하여 극 (極)히 용비(冗費)를 절약(節約)하여 이용후생지업(利用厚生之業)에 응용(應用 ) 함이 금일(今日)의 급무(急務)라. 절유(竊惟) 아현재(我現在) 군대(軍隊)는 용병 (傭兵)으로 조성(組成)한 고(故)로 미족위상하일치(未足爲上下一致) 국가완전지 방위(國家完全之防衛)일새 짐(朕)은 종금(從今) 군대쇄신(軍隊刷新)을 도(圖)하 여 사관양성(士官養成)에 전력(專力)하고 타일(他日) 징병법(徵兵法)을 발포(發 布)하여 공고(鞏固)한 병력(兵力)을 구비(具備)코자 하므로 짐(朕)이 자(玆)에 유 사(有司)를 명(命)하여 황실시위(皇室侍衛)에 필요(必要)한 자(者)를 선(選)진하 고 기타(其他)는 일시(一時) 해산(解散)케 하노라. 짐(朕)은 여등(汝等) 장졸(將 卒)의 숙적지로(宿積之勞)를 고념(顧念)하여 특(特)히 수기계급(隨其階級)하여 은금(恩金)을 반여(頒與)하노니 여등(汝等) 장교하사졸(將校下士卒)은 극체짐의 (克體朕意)하여 각취기업(各就其業)하여 무건(無愆)함을 기(期)하노라." 5) 《독립운동사 1》, p.453. 6) 참장은 오늘날 군대의 소장(少將) 계급에 비견된다. 당시와 현재의 계급체계를 대비해 보면 부장(副將)은 중장(中將), 참장은 소장, 정령(正領)은 대령(大領), 부령(副領)은 중령(中領), 참령(參領)은 소령(少領), 정위(正尉)는 대위(大尉), 부 위는 중위(中尉), 참위(參尉)는 소위(少尉)에 각각 비견할 수 있다. 7) 박은식(朴殷植) : 《한국통사(韓國痛史)》, p.125. "시일천음(是日天陰) 미우소 소(微雨蕭蕭) 오호(嗚呼) 훈련원자(訓練院者) 국가오백년(國家五百年) 강무지소 (講武至所) 현재군인(現在軍人) 역다년용약습예지장(亦多年踊躍習藝之場) 종금 일이별(從今日而別) 천기불조호(天其不吊乎)" 8) 박승환 (1869∼1907)은 기록에 따라 박승환(朴勝煥)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 獨立運動之血史), 박성환(朴星煥)(매천야록(梅泉野錄),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 ), 기려수필(騎驪隨筆)) 등으로 상이하나, 《고종실록(高宗實錄)》과 《관보(官 報)》등 관변측(官邊側) 기록에는 박승환(朴昇煥)으로 나타나고 있으므로 이를 따랐다. 9) 송상도(宋相燾) : 《기려수필(騎驢隨筆)》(국사편찬위원회, 1955), p.120 ; 박은 식(朴殷植) : 앞의 책, p.126. 10) 《독립운동사 1》, p.461. "군불능수국(軍不能守國) 신불능진충(臣不能盡忠) 만 사무석(萬死無惜)" 11) 《관보(官報)》제3864호, 융희(隆熙) 원년(元年) 9월(月) 6일(日), <휘보(彙 報)>. 12) 《독립운동사 1》, pp.461∼462 참조. 13) 《의병항쟁사(義兵抗爭史)》(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1984), pp.187∼189. ; 《독립운동사 1》, pp.463∼465. 14) 《독립운동사 1》, p.465. 15) 한 국 군 일 본 군 근 거 자 료 전사 부 상 포로 전사 부상 100 100 516100 - 한국통사(韓國痛史),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 之血史) 45 30 50 300 - 기려수필(騎驢隨筆), - 98(장교7) - - - 매천야록(梅泉野錄) 《의병항쟁사》, p.190. 한편, 자료에 따라 아래와 같이 양측의 피해 상황을 달 리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