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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 - 5) <심남일실기(沈南一實記)>, p.573. 6) <심남일실기(沈南一實記)>, pp.571∼572. 7) <심남일실기(沈南一實記)>, p.572. 8) 홍영기(洪英基) : 앞의 논문, pp.652∼653 참조. 9) 위의 논문, p.655. 10) <심남일실기(沈南一實記)>, p.579. 이 동요는 1909년 3월 11일(음) 능주(綾州) 풍치(風 峙)에서 일군 4백여명이 심남일 의병을 포위공격해 오자 심남일은 신묘한 계책으로 그들에 게 타격을 가한 뒤 포위망을 빠져 나왔으므로 인근의 주민들이 이때의 승첩을 기려서 부른 노래라고 전한다. 11) <심남일실기>, p.586, <고인동산군(古引洞散軍)> 추풍장졸읍상리(秋風將卒泣相離) 고인산전마거지(古引山前馬去遲) 일소성진종유일(一掃腥塵終有日) 막위삼대사생기(莫違三戴死生期). 12) <심남일실기(沈南一實記)>, p.587. <결고국강산(訣故國江山)> 문명일월차강산(文明日月此江山) 홀입성진암애간(忽入腥塵唵曖間) 미도일청귀지하(未覩一晴歸地下) 천추화벽혈흔반(千秋化碧血痕班) 이석용(李錫庸) 추풍소슬(秋風蕭瑟)하니 장사(將士)가 없을소냐 어화 우리 장사들아 한양성중(漢陽城中)바라 보니 원수놈이 간신이라 오백년 우리 종사 아마도 의병을 일으켜 간신을 타살하여 우리 백성 보전하여 한강수 띄 되도록 우리 대한 만만세1) 영웅의 득의시(得意時)라 구름같이 모여든다 격중가(激衆歌)를 불러 보세 원수놈이 왜놈이요 삼천리 우리 강산 어찌할까 왜놈을 쫓아 내고 우리 금상(今上) 봉안하고 삼각산이 숫돌 되고 즐기고 놀아 보세 이 노래는 이석용이 거의 초기에 의병들을 규합하기 위하여 손수 지은 국한혼용체 가사 <격중가(激衆歌)>이다. 이석용은 전라북도 내륙지방, 곧 소백산맥을 따라 활동한 인물로 후 기호남의병의 대표적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이석용은 1878년 전북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에서 시골 선비 김봉선(金鳳善)의 아들로 태 어났다. 그는 자를 경항(敬恒), 호를 정재(靜齋)라 하였다. 신라 사공(司公) 이한(李翰)의 후 손으로 6대조 이목(李穆)이 무오사화(戊午史禍)에서 김일손(金馹孫)과 더불어 윤필상(尹弼 商)에게 탄핵을 받아 낙향한 뒤로는 출사(出仕)한 자가 없어 그의 집안은 실경(實耕)에 종사 하는 한사(寒士), 즉 잔반(殘班)으로 전락하였다.2) 1895년 17세 나던 해에 이석용은 부근의 서당 훈장으로 있던 겸재(謙齋) 김관술(金觀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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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