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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의 풍운이 날로 위급하게 되자 선생은 비장한 뜻을 품고 미주로 건너 가시었다. 이역만리 여성의 몸으로서 국운의 만회를 위하여 주소 활약하시었는데 한편으로는 도산 안창호 선생과 뜻을 같이하시어 신한민보를 발간하시었다. 기미년 3.1운동에 즈음하여는 국내외의 긴밀한 연락을 맡으시고 독립운동에 크게 이바지하시었으며 1921년 10월 10일 근화여학교를 창설하시니 이것이 곧 덕성학원의 터전이 된 것이다. 이는 선생께서 지니신 바 3.1정신를 배양하고 민족독립의 길을 마련함에는 후배들을 교육함만 같음이 없다고 보신 그 숭고한 사상의 소치이었다. 그 뒤 선생께서는 오로지 여성교육에 헌신하시었으니 도리켜 보건대 좌와행주 나라와 겨레의 융성을 염원하시었으며 독신으로 평생을 자유와 진리와 정의를 위하여 굽힘이 없으셨으며 국운의 위난에서는 우국의 지사이시었으며 민족위난에서는 여성의 지도자이며 여성교육의 선각자이시었다. 선생은 1955년 6월 1일 향년 77세로 서거하시니 실로 선생을 숭앙하는 우리의 심정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바이며 그 유훈은 길이 후배들에게 이어질 것이다. 여기 선생의 공덕을 추모하여 거룩하신 생애를 돌에 쪼아 새기노니 영겁에 전하여질 것을 바라노라. 1966년 10월 10일 / 학교법인 덕성학원 이사장 박준섭 / 덕성여자대학교장 겸 덕성여자중고등학교장 송금선 / 김충현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