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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군 백호부대 주둔지(학골) 지나가는 길손이여! 이곳은 1950년 6.25 한국전쟁 당시 한국유격군 백호부대가 주둔하였던 곳이다.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존속한다. 역사를 망각함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으니라! 1950.10.14. 長淵高校(장연고교) 학생을 주축으로, 長淵郡(장연군) 청년들이 반공 무장대를 조직하여 궐기하였다. 1.4 후퇴 당시, 북한 전역중 유일하게 長淵(장연)무장대만이 남아, 고전분투하며 향토를 방위하였다. 1951.1.14 최후의 항전인 長淵邑(장연읍) 시가전에서 중과부족으로 패전하여 많은 피해와 인명손실을 입었다. 1951.3.6. 백령도에서 계급도 군번도 없이 오로지 향토수복과 자유 민주조국수호의 일념으로 26명이 선발되어 피신할 때 소지한 무기와 옷과 짚신을 신고 한국 유격군 백호부대를 창설하였다. 1951.1-1953. 7. 백호부대는 백령도 주변의 육도, 마합도, 월래도.(D-4연대), 초도(D-3연대)에 분산 주둔하여 백령도의 전초 방위기지 역할을 하였다. 북한에 육해공으로 잠입하여 백호 4연대에서 46회, 3연대 에서 37회의 신출귀몰한 유격작전을 수행하였다. 적 사살 2,110명, 생포 105명, 반공인사 구출 4,500여명, 3,000여정의 무기노획과, 수많은 군사 시설을 파괴하였다. 백호도 744여명의 전상자와, 340여명이 행방불명이 되었다. 백호의 유격전으로 공산군 1개사단 이상이 전방에 배치되지 못하였다. 상응한 국군의 피해를 격감시켰다. 오늘의 서해 5개 도서와 영해가 우리의 것이 된 근원은 한국유격군과 해병대의 절대적 공적이다. 1953.7. 휴전으로 전사한 전우의 비목 하나 세워주지 못하고 기지에서 철수하여 이곳에 주둔하였다. 저버린 내 고향 부모 형제와의 재회를 꿈꾸며 허식과 허약한 몸으로 훈련을 거듭하였다. 몹시 추웠다. 대청도민의 온정 어린 도움으로 지친 심신을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 1954.2. 육군 현역으로 편입되었다.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사선을 넘나든 전우간 재회의 기약없는 이별을 한 곳이다. 하염없이 북녘 고향을 바라보고, 전사한 전우의 마지막 모습을 되새기며 무거운 발을 옮긴 곳이다. "물! 물!,,, 내,,, 엄마이... 만나거든,,, 나 죽었다고 하지마라 - 나 살고 싶어,,, 나 좀 살려줘,,, 물,," 서기 2001년 9월 23일 사단법인 한국유격군 백호부대 전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