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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왁싱기법을 세상에 널리 알리다. 어떻게 이어오고 어떻게 발전시킨 높은 수준의 한국 귀금속 공예 기술을 이대로 쓰러지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임춘 선생은 귀금속 공예에 도전하는 후진들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내가 처음 이 일을 배울 때 너무 힘들었거든. 후배들은 좀 더 쉽게 배우고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왁싱기법을 고안했지. 아마 10년 배울 기술을 1년 정도로 단축시켜 줄 거야. 한..4년 동안 연구하고 커리큘럼 짜고 책을 만들어서 출판했어. 금덩어리를 직접 깎아서 세공하는 것보다 초(wax, 밀랍)에다 조각해서 활용하면 훨 씬 수월하거든. 시간도 절약되고, 표현도 무척 자유롭지. 금속자체에 는 표현 안 되는 기술들도 많은데 왁싱기법으로 많이 극복돼.” 귀금속 가공에 혁신적인 왁싱기법. 외국에서는 놀라워하며 서로 배우고 싶어 했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관심이 적다. 출판 당시 사진을 찍어주는 스튜디오가 없어 직접 찍었고 기천만 원을 들여서 책을 냈 지만 백만 원도 채 못 벌었다. 기술은 곧 장인의 경쟁력이다. 자신의 독자적인 기술력은 자신을 돋보이게 할 뿐 아니라 소위 밥그릇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임춘 선 생은 자신의 왁싱기법을 책으로 출판하며 세상에 공개해버렸다. 왜? “나 혼자 잘하면 뭐해. 귀금속 업계가 죽어가는데. ‘나는 어렵게 배 웠지만 후배들을 그런 고생 안 하게 하자.’ 그런 생각이었어. 자기 밥그릇을 열어주는데 다들 미쳤다고 했지만 나는 이게 맞다고 생각 했지” 나보다 전체를 생각하는 모습. 보 유한 기술만 명장이 아니었다. 왁 싱기술이 담긴 책으로 학원을 열어 후진양성에도 힘썼다. “이 책으로 한 천 명 정도 가르쳤어. 그땐 이 건물을 다 썼는데. 정 말 미래가 안 보이는 학생들을 다 돌려보내고 수료시킨 사람들이 500명 정도였어. 미국, 일본, 베트남 각지를 다니면서 실력을 뽐내더 라고. 아프리카 왕실에 가서 일하다 오는 사람도 있고. 이 왁싱기법 이 대량생산하기에 좋으니까 악세서리 업계에 크게 도움이 되더라 고. IMF 어렵던 시기에 아마 큰 힘이 되었을 거야. 제작시간이 1/5로 줄고 다양하고 복잡한 디자인도 표현이 가능해졌으니까. 전국 귀금속 시장에서 내 디자인을 받으러 몰려드는데 단돈 500만 원으로 시작한 사람이 내 디자인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30억까지 벌더라고. 사람 들은 그러지, 왜 내가 직접 사업을 안 하냐고. 근데 나는 이게 좋아.” 물질적 가치까지도 초월하는 예술에 대한 선생의 사랑과 열정. 선 생은 그 사랑과 열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외롭고 쓸쓸함을 느끼긴 하지만 나는 이게 너무너무 좋은 걸. 완 전히 미쳐 있어. 허허. 하고 싶은 것도 너무너무 많고, 해야 할 것도 너무너무 많고. 눈에 보이는 건 다 디자인이고, 눈에 보이는 건 다 해 보고 싶어. 근데 해지면 집에 가야하잖아. 그게 너무 싫어.” 나는 귀금속 제일 명장 이임춘이다! 작품활동과 함께 후진양성에 힘쓰고, 기능경기대회 출제위원, 평 가위원, 기능장 출제위원, 대학 출강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 던 무렵 출전한 디자인 공모전으로 이름을 보다 널리 알리게 됐다. 선생의 왁스기법 전부가 담긴 기술서적. 1997년 초판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