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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41 대한민국 해병대 www. rokmc.mil.kr 49 “오오. 어서 와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거칠면서도 섬세해 보이는 손이 반가이 맞아주었다. 귀금속 공예 명장 이임춘 선생(59, 부후111기). 대한민국 귀금속 공예 역사를 담고 있는 듯 멋스러운 수 염이 인상적인 그가 이번 『해병대지』 41호 인터뷰의 주인공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신이 손재주가 좋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는 공예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해병대 부사관으로 입대. 전역 후 다시 공예의 한 길만을 걸어오며 대한민국 귀금속 공예의 최정상 에 오른 이임춘 선생의 이야기는 간단히 정리만 해보아도 예사롭지 않다. 세시간 여 동안 이임춘 선생에게서 해병대 이야기와, 귀금속 이야기를 들으며 장인정신에 대한 철학을 들어보았다. 『해병대지』 독자들도 이임춘 선생과의 이야기 속으로 푹 빠져보자. 나의 운명 하나. 해병대 “공예하는 애들은 하나같이 군대를 안 가려고 그래. 군대 가 있는 동안 손이 쉬고 있으면 굳어버린다 이거야. 그래서 내가 그랬지 ‘야! 내가 너네들 대표로 간다.’ 이왕이면 멋있는 곳을 가야지. 그렇다면 답은 뭐겠어. 해병대 아냐. 우리 지역에서 해병대 부사관 10명을 선 발하는데 300명이 넘게 온 거야. 시험도 국·영·수는 물론이고 면 접에 체력검정까지 3박 4일을 꼬박 보더라니까.” 30대 1을 뚫고 지역에서 선발되었는데, 진해에 가보니 이게 웬일 각 지역에서 선발된 400명이 모여 있는데 가입소 기간이 또 예술이 었다고 한다. “교육대에 400명이 모여 있는데 여 기서 또 시작이야. 가입소 기간 이 어찌나 혹독한지 말이야. 아예 안 될 것 같은 사람들을 애초에 가 려내려고 한 거지. 거기서 버티고 또 버텨서 임관을 했는데. 기분 좋 았어. 해병대 간거 절대 후회 안 해.” 군생활을 너무 훌륭하게 잘 해내기도 하거니와 진급시험에서 1등 을 해버린 탓에 장기 복무하라는 권유도 많았다. 빗발치는 군생활 권유를 뿌리치고 이렇게 외쳤다. ‘나 공예할 거야!’ 모범적(?)이고 훌륭했다는 이임춘 선생의 부사관 생활은 어떠했을 까? 술술 쏟아져 나오는 군대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자. “내가 72대대 창설 멤버였는데, 포항 거기 완전 허허벌판이었어. 맨땅에 헤딩하는 자세로 아주 그냥 불도저로 밀어서 연병장 만들고, 연못 만들고, 잔디밭, 활주로, 체력단련장 만들고 난리도 아니었지. 그 와중에 72대대에 화기중대가 창설되면서 중대장님(황중호 예비 역 장군)과 함께 화기중대 보급/작전하사로 보직됐어. 당시 모든 군 대가 그랬겠지만 보급이 제대로 될 리가 있나. 개인 병기만 머릿수대 로 맞춰져있고 다른 보급품들은 형편이 없는 거야. 개인장구류 채워 넣느라고 중대장님과 내가 정말 피땀을 흘렸다는 거 아니야.” 해사교관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