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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순천10.19사건(일명 여순사건) 1948년 10월 19일 밤, 여수 주둔 국군 제14연대 2,000여 군인들이 제주4.3 집압명령을 거부하고 봉기하였다. 그들은 '동족상잔 결사반대, 미군 즉시 철퇴'등을 주장하며, 여수.순천.광양.구례.보성.고흥 등으로 진출하였다. 해방 이후 미군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통일국가건설, 식민잔재 청산, 토지개혁과 같은 시대적 요구에 재대로 부응하지 않아 민중들은 봉기에 상당히 호응하였다. 위렵을 느낀 정부는 '토벌사령부'를 살치하여 23일 순천을, 27일 여수를 차례로 진압하였다. 그러나 진압과정에서 봉기군에 가담하여 협력한 사람을 색출하면서 정확한 근거나 법적 절차도 없이 누군가를 지목하면 처벌하는 '손가락총'까지 사용하였다. 1949년 전라남도가 발표한 민간인 희생자는 총 11,131명이지만 정확한 희생자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행히 2021년 7월 20일 '여수.순천10.19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으로 나아갈 토대가 마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