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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우두봉 집사는 우영식 씨의 3남이다. 그는 사설 경찰대를 조직하여 지역 치안을 안정시키는 데 노력하였다. 그는 경주교회 개척자로 1948년 4월에 월평 고향 집에 잠시 들른 길에 공비들에게 표적 대상이 되어 사살되었다. 그는 목회자로 헌신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두봉 집사는 월평 땅에 처음으로 순교의 피를 뿌렸다. 순교자 우재만 집사는 해방 이후 한국전쟁 시 좌우익으로 혼란한 시기에 지역 유지로 명망이 높았다. 1950년 2월 공비들이 우집사에게 들이닥쳐 밧줄로 묶어 잡아갔다. 우 집사의 부인 최재선 집사는 남편을 향해 울면서 “성도의 목숨은 하나님께 달렸으니 두려워 마이소!” 큰소리로 외쳤다고 전한다. 시신은 아침에 찾았는데 불태워진 뒤였다. 우재만 집사는 한국전쟁 후, 고장을 지키다 순직한 울산지역 148명의 이름과 함께 울산충혼탑에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아 대전 국립공원묘원에 안장돼 있다. 한국전쟁 중, 교회당에서 정두란 집사와 조재연 성도와 조말복 성도가 기도하다가 월평교회를 습격한 공비들에게 순교를 당했다. 교회 마당에 끌려 나온 정두란 집사는 공비들을 향해 “젊은이들도 예수 믿고 죄 용서받고 죽은 후에 천당 갑시데이” 전도한 후,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찬송을 불렸다. 이때 공비들은 총을 난사해 순교를 당했다. 이 자리에 함께 기도하고 있었던 조괄문 전도사는 공비가 들어올 때 강단 기도실 문으로 피신했고, 정분순 사모는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기절했다가 살아났으며, 우인복 학생은 총을 맞기 전에 쓰러져 살아났다. 학생은 성장하여 울산 남산교회 장로로 헌신하였다. 여섯 번째 순교자는 우재만 집사의 동생인 우성만 집사이다. 우 집사는 1951년 8월 14일 추석 명절을 맞아 홀로된 형수를 위로하기 위해 큰댁을 찾았다. 이때 들이닥친 공비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우 집사를 사살했다. 우성만 집사는 대전 국립공원묘원에 안장됐다 출처 : 풀가스펠뉴스(http://www.fg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