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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백골부대 6중대 영혼들의 비애 우리 진백골 6중대는 나라가 극도로 혼란한 시기인 1948년 11월 20일 경북 포항에서 3여단 예하부대로 편성되었습니다,안강 기계에서 적12사단을 전멸시킨 대승과 형산강 전투에서 야간공격의 승리로 적이 제일 무서워 하는 부대로 위명을 떨첬으며, 전쟁기간 동안 많은 격전을 승리로 이끌어 무패의 신화를 창조 하였습니다,또한 진백골 6중대는 전쟁 초기에 3회에 걸친 특진으로 모든 부대원이 하사관으로 편성되어 있었고,역경에 처하였을때 마다 백전 불굴의 투지로 이를 극복하여 당시 지휘관으로부터 "백골용사 1명과 북괴군 100명을 바꾸지않겠다" 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며 또 8사단,5사단,9사단 등 다른 부대가 방어하지못하고 무너지면 지원 부대로 나서 언제나 승리하는 최고의 부대로 명성을 떨처 "빵꾸부대"라고 불렀습니다,그러나 애석하게도 통일을 눈 앞에두고 1950년 11월 30일 최 북단 진격지역인 "부령"을 점령했든 부대가 미처 철수하지 못하고 전원 옥쇄한 가슴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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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안강,기계면 구지리에서 인민군 12사단 을 전멸시키고 또 안강 "어래산" 에서 "오진우 유격대"600여명을 사살과 동시에 북진을 시작.청송,영양,봉화,영주,평창,양양,인제,단발령을 지나 10월1일에"전군 최초로 38선을 돌파"하여,강원도 안변에서 재편성중인 적 2개연대와 교전."전원사살"한후 함경남도 "원산을 탈환"하었습니다,그리고 문창,고원,영흥,함흥을 거처 계속 북진, 장진"수력발전소"에서 중공군 1개대대를 사살,점령후 함흥으로 이동하여 신포,성진,길주,명천,주을,청진까지진격,전선 최전방 최악의 조건에 있는 전투는 모두"진백골 6중대가 전담"하여 전승을 거두었습니다,청진에서 부대 휴식후 적 전방 교란을 목적으로 "부령" 으로 침투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고 최악의 조건하에서도 진백골 6중대는 부령의 턱밑까지 다가 갔습니다,1950년 12월 1일 전군 작전상 후퇴 명령이 하달 되었는데도 당시 "이원계 소령"이 지휘하는 진백골 6중대는 부령 공격 명령을 받고 목표지점에 도달할 때까지는 "무전기 사용을 금지"했기 때문에 연락할 방법이 없어 철수 명령을 전달 받을수 없었습니다, 대대는 모두 당황했고 2,3일 후면 국경선까지 도달할수 있는데 철수하라는 지시에 분개하였습니다,대대장은 끝까지 진백골 6중대와 통신연락을 시도 했으나 무전기의 수화기에는 아무런 응답이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너무나도 안타깝고 가슴아픈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시간을 지체할수없어 2대대는 철수를 시작 하였고, 결국 "부령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어느 고지에 진백골 6중대를 남겨둔체 대대는 철수해야 만 했습니다. 그후 일주일 후 연락병으로 부터 후퇴명령을 하달받고 후퇴를 시작,흥남쪽으로 후퇴하였으나 벌써 적들에게 퇴로를 차단 당하여 해안으로 가지 못하고 태백산맥을 타고 남하하기 시작, 보급품과 탄약등이 부족한 상태에서 인민군들의 기습과 공격을 막아내고 2개월여에 걸처 남쪽으로 향하였으나 중대원 160여명이 1951년 2월중순 산수갑산,풍산,광덕 어느 골짜기에서 새벽 6시경 "적과의 마지막 전투중" 중대장은 적의 공격으로 양쪽 다리에 관통상을 입어 적의 포로가 되기 싫다고, 부대원들의 후퇴를 독려한후 "스스로 자폭" 하었으며. 160명 중대원중,겨우 2명만이 적의 포로가 되여 생존하고 있으나, 전사한 중대원 전원이 아직까지도 "전사"처리되지 못하고 현재까지 "행방불명" 으로 처리되여 아무런 "국가유공자"의 혜택을 받지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전선의 최 남단 경북 안강에서는 "조국을 구했고" 전선의 최 북단 함경북도 부령에서는 마지막으로 남아 "전 군을" 구하였든 것입니다.부령에서 풍산 광덕까지 2개월에 걸친 후퇴작전에서 때로는 굶주리고 수많은 적의 기습,한겨울 모진 추위 속에서 수많은 전우들이 전사 하었습니다.이 내용은 마지막 전투중 적의 포로가 되였다가 석방된 "김종열 외1명(조 중사)"에 의하여 학인하였습니다. 그로부터 53년이 지났지만 160명의 6중대 전우들이 2개월여에 걸친 눈덥힌 부령지역 외딴 산에서 부터 산수갑산 풍산. 광덕까지 일천리에 걸처서 당했을 당황과 아품을 어떻게 말로 표련 할수 있겠습니까.... *참조: "타이거 장군 송요찬" 회록 -육군 교육사령부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