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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군 화학산을 점거한 350여명의 무장공비를 소탕하기 위하여 육군 8사단 3대대 10중대는 1951년 4월 2일 대구를 출발하여 이양면에 도착 주둔하다가 동년 4월6일 무장공비의 공격을 받아 백병전까지 치렀으나 김영훈 소위외 26명이 전사하였다.이 사체를 광주로 옮기다 현 위치에 가매장하였으나 2001년 육군 31사단 주관으로 국립묘지에 이장하고 가묘와 무명용사 충혼비가 있었지만 이도 없어졌다. 마을주민에게 물으니 이 향나무 앞에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