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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을 동원하였으며 그들은 삽 괭이 몽둥이로 수감된 선량한 민주인사의 사형집행에 강제로 참여시키는 악랄함을 보였으며 아울러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풍물을 울리기까지 하는 참혹한 학살을 한가위 날 석양까지 진행한 것이다. 그 와중에 천우신조로 불과 2분여 차이로 지옥같은 형장을 탈출한 생존자가 200여명 있었는데 이들 중 15명이 부남사람들이었다. 같은 시기 무주군 전역에서 끌려 온 66명이 무주 내무서에 수감되었는데 그중 7명이 부남사람이었다. 이들은 30여일 동안 온갖 고초를 당했을뿐 아니라 한가위 날 홍혼 무렵 무주면 용포리 하늘바위에서 총살당했다. 그 때 부남사람 3명이 지적적으로 살아 돌아왔다. 이렇듯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18명은 그 후 9.28수복과 1952년 4월 북한군의 부남지서 습격사건, 1953년 초봄 금산군 남이면 600고지 전투, 1953년 9월초 금산 금성지서 전투, 동년 9월 중순 1.2차 무주 구천동작전등에 참여하였고 부남지서와 부남면사무소가 합동으로 전개한 선무공작에 동참하여 4년여 동안 공비토벌과 치안확보에 앞장서는 등 그 공이 매우 컸으며 공들중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이 12명이요 생존자는 6명이라. 어언 50여 성상이 지나는 동안 공들의 살신성인의 정신과 공적이 역사 속에 사라질뻔했는데 이번 무주군의 지원으로 이 비를 세우게 되니 감개무량이요 후세에 산 교육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 그 때의 참상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다시는 이 땅에 민족상잔의 비극이 재현되지 않기를 기원하며 화해와 사랑과 인내로 7천만 동포가 염원하는 평화통일을 기원하면서 본대로 사실대로 우와 같이 기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