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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의 국운이 기울어져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마침내 일본 통감정치를 받게되자 통분을 참지못한 의병들이 곳곳에서 일어났으니 그중의 한 장수가 곧 문태서대장이었다. 문대장은 무주, 함양, 용담, 장수, 안의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덕유산 구천동을 근거로 박춘실, 전성보, 신탁광, 박수문, 김원일등 장사들을 이끌고 무주, 이원, 청주, 보은, 상주등 여러곳에서 왜적을 무찔러 빛나는 공훈을 세웠으며 한일합방후에도 독립투쟁을 계속하다가 1912년 8월 17일 함양군 서상면에서 붙잡혀 여러곳으로 끌려다니며 갖은 악형을 당하던중 드디어 34세의 한창 나이로 하늘에 사무치는 한을 품은채 순국하였다. 거룩한 그 뜻 백세의 거울이요 높은 그 공적 천추에 빛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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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4월 무주군민들에 의하여 위국의병대장 문태서지비 "진충보국(盡忠報國) 하제만민(下濟萬民) / 위국의병대장(爲國義兵大將) 문태서지비(文泰瑞之碑) / 명진사해 (名振四海) 난진기덕(難盡其德) / 무신 4월 일(戊申 四月 日)" 이라 세겨 건립했던 공적비를 일본경찰이 철거한 이후 오랜세월 잊고 니나왔다. 그후 1964년 5월 무주군에서는 순국비 건립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의병들의 활동 근거지였던 구천동에다 기존의 순국비를 세웠으나 그 규모가 작고 초라하여 1995년 뜻깊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90여년전 나라위해 용감히 싸우다 가신 님의 호국정신을 영원히 기리고자 새로이 마련한 이 터 위에다 이 비를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