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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 슬기로운 기백이 타오르는 기백이 타오르는 이 푸른 언덕에 겨레와 강토를 굽어 보는 높고 큰 봉우리가 있으니 이가 곧 의병대장 장윤덕 의사이시다. 서기 1872년 7월 6일 예천읍에서 탄생하니 자는 원숙이요 호는 성암이다. 일끼지 한학을 닦아 예천군 수서기의 관직에 있을 때 저 망국의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검은 구름은 하늘을 휘덮고 도적의 발길이 삼천리를 짓밟으니 가슴에 품은 의분의 칼은 갈수록 서슬이 푸르렀다. 서기 1907년 4월 서울에 올라가 침략자의 우두머리와 매국역도의 주륙을 꾀하였으나 배신자의 밀고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나 원한의 칼날은 더욱 원수를 노려 늦춤이 없더니 7월에 격문을 사방에 뿌려 삼백여명의 의병을 일으켜 풍기 분파소를 쳐부수었으며 봉화의 소굴을 불태우고 문경 용궁 예천등지로 피의 항쟁을 계속하던 중 특히 문경땅 갈벌싸움에서는 이강년 밈긍호등의 의진과 합세하며 왜적의 수비대와 경찰대를 섬명시켜 민족의 의기를 천추에 떨쳤다. 이어 의사는 대구수비대를 무찌르고자 의진을 이끌고 처들어 가다가 상주에서 대구수비대와 격전끝에 총상을 입고 마침내 왜적에게 잡힌 몸이 되어 갖은 악형을 당하였으나 끝내 굴하지 않고 앞니로 혀를 끊어 맵고 곧은 절개를 지켰으니 이것이 곧 배달의 기백이요 화랑의 얼이다. 아 아 원통하여라. 왜적의 모진 손길은 드디어 의사를 총상형에 처하였으니 서기 1907년 9월 16일 35세의 젊은 상주군 함창땅에 떨어져 잠자던 겨레의 횃불이 되었도다. 조국이 광복된지 스무해 되는 오늘 나라의 기둥될 준재들이 모인 이곳 경북대학교 뜰어 드높이 돌을 세우고 의로운 사적을 새겨 이 땅의 젊은 학도들에게 길이 전하니 후진들은 명심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