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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한국전쟁때에 주한 미8군 사령관으로 활약한 워커장군, 그의 외아들도 최전선 중대장으로 나와있었다. 그는 1950,12,23日, 서울 北쪽 의정부의 미군부대를 방문하는 길에 아들, '샘 워커' 중위에게 은성훈장을 직접 수여하기 위하여 얼어붙은 도로를 맹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워커중장의 뒤에서 따라오던 한국군 트럭이 추월하려다가 추돌하게 되어 그만 장군의 지프가 딩굴면서 보좌관과 운전병은 튕겨나와 살았지만 워커장군은 즉사하고 만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 소식을 전해 듣자, 사고를 낸 한국군 운전병을 즉각 처형하도록 지시한다. 옆에 있던 美 군사고문관 짐.하우스맨 대위의 만류로 운전병은 3年 징역형을 받게된다..... 1950년 12월 25일, 미 제24사단의 일선 중대장으로 근무하던 샘 워커 ( Sam S. Walker 1925~ ) 대위는 유엔군사령관이었던 맥아더에게 호출 당하여 도쿄의 극동군사령부를 방문하였고, "나는 귀관에게 워커 대장의 유해를 알링턴 국립묘지까지 운구하도록 지시한다.”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런데 원수로부터 직접 명령을 받은 샘 워커대위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대며 반대했습니다. “각하! 저는 일선의 보병 중대장이고 지금 저희 부대는 후퇴중입니다. 후퇴작전이 얼마나 어려운지 각하가 오히려 더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시점에 중대장 교체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버님 시신의 운구는 영현담당자들이 잘 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당장 전선으로 돌아가서 부대를 지휘하겠습니다.” 이처럼 샘 워커는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워싱턴의 육군성에 근무하게 되었지만 이후 베트남전쟁 등을 거치며 1977년에 미 육군 최연소 대장에 올랐습니다. 이것은 아직까지 미군 역사상 부자가 대장에 오른 두 차례 밖에 없는 희귀한 예입니다. - 출처 : 전쟁과 사람 그들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