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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나라가 이민족 침략하의 위기에 처해있을때 선뜻 목숨을 바쳐 애국의 표상이 되기란 그리 쉬운 용기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살려면 죽고 죽음을 무릅쓴 이 살아남는 교훈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의사는 1927년 3월 6일생이다. 아버지 전의이씨 한필, 어머니 민순이 사이의 4남매가운데 차남이다. 김제 중앙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이리 농림학교에 재학중인 때다. 일제의 발악이 절정에 이른 1945년 4월 17일에 이의사는 동지들과 함께 김제 경찰서에 구금되고 만다. 이 동지들은 이 의사가 조직한 화랑회의 장지환, 김구, 김영준, 호중기, 서기용, 김봉수, 강동석, 박기춘 거사에 혼연히 동지애로 합류한 바 있는 독립당의 장이규, 김직수, 김환용등의 이리농림학교의 선후배 재학동지와 기타 김해룡, 김재두, 이종문이다. 1943년 5월 17일 밤에 금구면에 있는 일인 경영의 고깔봉 광산과 금구면 주재소를 습격하여 무기와 차량을 마련하고 김제 경찰서를 습격한 다음에는 목천포 철교를 파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