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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옆에는 이상운 학생 순의비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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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운학생 순의비 이상운 학생은 1927.3.26일 생으로 충북 청원 출신이다. 1943년 이리농림학교 2학년 떄 동교생 장지환, 김구, 호중기, 김직수, 서기용, 박기춘, 강동석 등을 동지로 규합하여 항일결사 화랑회를 조직하고, 동회의 대표로 활약하였다고 한다. 이들의 행동방략은 우선 총기 및 폭약등을 탈취하여 무장을 갖춘 후 주재소 및 경찰서를 습격하고, 또 만경교를 폭파함으로써 일제의 수탈경로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그 첫 번째 계획으로 폭약및 총기를 탈취하기 위해 김제군 금구면 오산리에 있는 20여명이 광산에 잠입하였으나 일경의 삼엄한 경비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 화랑회의 조직이 일경에 발각됨으로써 1945년 4월 4일에 전회원이 피체되었다. 피체후 그는 일경의 혹독한 고문에 굴하지 않고 다른 회원에게 모범을 보이면서 끝까지 항거하다가 1945년 7월 17일에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이에 애국지사 화랑회 이상운의사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고자 이리농림동창회에서는 1984년 8월 10일 3.4M 규모로 순의비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