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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나늘 당하여 남보다 뚜렸한 단심을 가지고 앞장서서 용기와 희생정신으로 진충보국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조선뒤의 혼란한 와중에서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하여 온갖 심혈을 기울이고 직접 반공일선에 참가하여 이 고장 평화수호에 이바지한 공적은 참으로 붓으로 다 할수없이 많은 비의를 지닌분이계시는바 그가 바로 여기에 추모하는 최주일공이시다. 공의 명은 영철이며 자가 주일이다. 1906년 4월20일 김제군 죽산면 죽산리에서 아버지 학삼공과 어미니 밀양박씨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향수 58세를 누리고 1963년 11월17일에 영면하셨으니 지금 묘는 명량산 남와선영하에 안장되어있다. 관은 전주이며 문충공을 시조로 하여 25세손이 되니 대대로 학문과 문장이 뚜렷이 빛나고 청백리로 지킨 절의가 세상에서 우러러 보게 되었으니 실록이나 야사에 찬여하여 우루 다물수 없음을 이미 선배가 갖추어 말했더니라 특히 11대조 득남공의 번민장군원종공신으로서 활약과 10대조인 종원공의 통덕랑으로서의 영예는 중흥의 기식을 더욱 높인바 있고 증조 흥일공 부 재업공에 이르러서는 향리로서의 부덕을 포시하는 문망을 확고히 세워 놓고 있었다. 향리에서 수학을 마치고 전주 신흥학교 군산 영명학교를 거처 왜정치하라 향리에 도라와 영농에 전념하며 청소년들에게 민족주의를 부식하는데 지기를바쳤으니야학을 솔선하고 교회를 후원하는등을 통해서나 로골한 반일은누님이신 최구만여사가 백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