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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 역사상에 그렇게도 처참한 피를 뿌린 1950년 6.25동란 동족상잔의 비극이야말로 영원히 잊을수 없는 슬픈 일이었다. 그러기에 북한 공산군들의 반역적인 남한침공 때 우리는 조국과 자유를 위하여 그들과 싸우면서도 동포의 양심으로 울며 싸웠던 것이다. 마침내 비인간적이요 반민족적인 그들을 격퇴시켜 승리를 거두었던 것은 실로 다행한 일이었던 바 가장 통쾌했던 것은 무극리 전투였다. 우리 국군 제6사단 제7연대 제1대대 장병들은 7월6일 치열한 전투끝에 무극리를 탈환하고 그대로 북진하다가 역습을 받아 음성쪽으로 후퇴 제2대대도 진천으로 향하다가 다시 음성으로 귀환, 제3대대는 용원리 방면으로 철수했다. 7월7일 공산군 제15사단 제48연대 병력이 장호원으로 부터 충주를 향해 남쪽으로 내려오므로 우리 제1대대는 무극리와 음성사이를 방어하고 제2대대는 644고지를 점령했었다. 이때 공산군들은 동락국민학교에 전병력을 집결 수십대 차량과 일개대대의 포까지 설치했으나 이를 발견한 우리 제2대대는 병력 겨우 4백명. 연대의 지휘를 받을 길조차 없으므로 주저하다가 절호한 기회이므로 공격을 결정했었다. 마침내 포화는 터졌다. 7월 7일 정각17시였다.제6중대의 집중사격은 문자그대로 청천병력이었다.다시 이어 우리 8중대의 포탄이 또 떨어졌다.너무도 정확하게 적의 포진지한복판에 명중되어 포대는 완전파괴되고 시체들이 공중에 떠 올랐으며 도망가는 적들마저 우리들의 포위망에 섬멸되어 최후의 개가를 부르니 8월8일 8시였다. 이것이 통쾌한 승첩을 거둔 그 날의 전투였거니와 굳이 그 사실을 새겨 여기에 비를 세우는 뜻은 뒤에 오는 자손들에게 피 흘린 일을 기억케하고 조국수호와 자유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 민족의 염원인 통일성업을 이루게 하고자 함이니 누구나 여기 오거든 옷깃을 여미고 묵념을 올리며 사라사랑할 생각을 거듭 다짐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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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 역사상에 그렇게도 처참한 피를 뿌린 1950년 6.25동란 동족상잔의 비극이야말로 영원히 잊을수 없는 슬픈 일이었다. 그러기에 북한 공산군들의 반역적인 남한침공 때 우리는 조국과 자유를 위하여 그들과 싸우면서도 동포의 양심으로 울며 싸웠던 것이다. 마침내 비인간적이요 반민족적인 그들을 격퇴시켜 승리를 거두었던 것은 실로 다행한 일이었던 바 가장 통쾌했던 것은 무극리 전투였다. 우리 국군 제6사단 제7연대 제1대대 장병들은 7월6일 치열한 전투끝에 무극리를 탈환하고 그대로 북진하다가 역습을 받아 음성쪽으로 후퇴 제2대대도 진천으로 향하다가 다시 음성으로 귀환, 제3대대는 용원리 방면으로 철수했다. 7월7일 공산군 제15사단 제48연대 병력이 장호원으로부터 충주를 향해 남쪽으로 내려오므로 우리 제1대대는 무극리와 음성 사이를 방어하고 제2대대는 644고지를 점령했었다. 이때 공산군들은 동락국민학교에 전 병력을 집결 수십대 차량과 일개 대대의 포까지 설치했으나 이를 발견한 우리 제2대대는 병력 겨우 4백명 연대의 지휘를 받을 길조차 없으므로 주저하다가 절호한 기회이므로 공격을 결정했었다. 마침내 포화는 터졌다. 7월7일 정각17시였다. 제6중대의 집중사격은 문자 그대로 청천벽력이었다. 다시 이어 우리 제8중대의 포탄이 또 떨어졌다. 너무도 정확하게 적의 포진지 한복판에 명중되어 포대는 완전파괴되고 시체들이 공중에 떠 올랐으며 도망가는 적들마저 우리들의 포위망에 섬멸되어 최후의 개가를 부르니 8월8일 8시였다. 이것이 통쾌한 승첩을 거둔 그 날의 전투였거니와 굳이 그 사실을 새겨 여기에 비를 세우는 뜻은 뒤에 오는 자손들에게 피 흘린 일을 기억케하고 조국수호와 자유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 민족의 염원인 통일성업을 이루게 하고자 함이니 누구나 여기 오거든 옷깃 여미고 묵념을 올리며 나라사랑할 생각을 거듭 다짐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