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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이 일어나고 청주 지역에서 큰 전투는 없었으나 인민군들이 후퇴하면서 공비잔당들이 주요시설을 습격하고 민간인들을 괴롭혀 그 피해가 막심했다.국군과 연합군이 인천상륙 작전으로 한반도의 허리를 장악하자 미처 후퇴를 못한 괴뢰도당들이 산악지대에 진을 치기도하고 이동을 하면서 관공서 또는 민간 가옥을 습격하여 재산과 가축, 식량 등을 강탈하고 양민들을 죽이는 만행을 일삼았다. 인근의 어느 동네에서는 음식을 만들어 공출하라는압력을 넣어 부녀자들에게 음식을 나르게 하고 못된 짓 까지 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여기저기서 공비들이 출몰하여 양민들을 괴롭혔으나 전투인력이 부족하여 이들을 소탕하는데 많은 희생이 따랐다. 1961년 5월26일 숨어 지내며 못된 짓을 일삼든 잔당들이 공포분위기 조성과 혼란을 야기할 목적으로 야음을 틈타 청주 형무소와 통신소, 도청을 습격하여 인명 살상과 방화를 저질렀는데 이를 청주의 5.26사건 이라한다. 처음 탑동에 있던 형무소를 기습하여 형무관들을 살상하고 형무소 문을 열어 난동을 부리자 청주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의 개입으로 도주하면서 통신소를 부수고 전선을 끊으며 도청으로 진입하여 본관을 제외한 목조건물이던 회의실과 문서고등에 불을 지르고 도망을 갔다. 이 사건으로 여러 명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청주시내에는 전기와 통신이 끊겨 시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도청의 주요 서류가 불타는 바람에 도정 수행에 어려움이 많았다 한다. 이 사건으로 희생된 분들을 기리기 위해 탑동 정수장 큰길 옆에 반공유적비가 세워졌다. 출처 : 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 회원보 은빛조각보 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