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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윤찬복 여사 충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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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찬복은 평남 순천(順川) 사람이다. 기독교 전도사로 있던 그는 1919년 음력 8월 평양(平壤)의 예수교신학교 기숙사에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총무 박승명(朴承明)으로부터 향촌회(鄕村會)를 조직할 것을 권유받고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최복길(崔福吉)·정찬성(鄭燦成) 등과 함께 동년 음력 10월 9일경 순천군 제현면(濟賢面)의 예수교계열 여학교에서 수십명의 교인들을 중심으로 대한국민회부인향촌회(大韓國民會婦人鄕村會)를 조직하였다. 그는 동회의 회장을 맡고 최복길·정찬성은 회계를 담당하였다. 동회는 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할 것을 목적으로 회원들로부터 4원씩을 모금한 후 그중 1원은 향촌회의 경비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군자금으로 적립하였다. 이렇게 하여 모금한 160원을 1920년 3월(음력) 임시정부 요원 차경신(車敬信)에게 교부하였다. 동회는 이후에도 독립운동을 계속하던 중 1921년 1월 조직이 노출되어 그를 비롯한 동지들은 일경에 피체되었다. 그는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