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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엔 일월이 있어 세상이 밝고 땅엔 금수강산이 있어 유구한 역사가 이어왔는데 일제의 탄압으로 일월이 빛을 잃고 강산이 피폐해졌을때 종교활동을 통하여 지하에서 조선의 독립운동을 펼친이가 있었으니 그 분이 바로 명석 오철식선생이다. 오공은 함양인으로 려말절신인 두암 휘 상덕의 15대손으로 휘 길원과 강릉김씨 사이에서 고종 10년 9월 6일 연산 장전에서 태어났다. 공의 휘는 상학이요 자는 영화인데 초명은 철식이다. 인품이 중후하고 의로워 평소에 국치의 한을 품고 살던중 1931년 8월에 김성규의 권유로 황석공교에 입교하였다. 황석공교는 석재 김영식이 3.1운동이 천도교와 기독교인이 주도함을 보고 조선독립을 위하여 황석공 소화를 근거로 신애경을 교지로 삼아 세운 종교단체이다. 1931년 11월에 논산 부적면 부인리 염한포의 집에서 김성규로부터 항석공교의 이면에는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결사된 단체임을 설명듣고 결사에 가입하였다. 1935년 3월에는 자택에서 이하익을 인도하여 치성제를 지내고 황극교로 개명됨을 알리고 입교시켰다. 1936년 11월에 이하익 김익수등 20여명에게 황극교가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결사됨을 알리고 가입시켰다. 동 12월엔 김천 대항면 박춘하와 금산 금산면 상가리 이태제등 10명을 입교시켰다. 1937년 4월에 연산 천호산에서 하늘에 천류를 지내는데 참석하였다. 또 자택에서 은세룡 김성규등과 충남북에 조직기관인 대각설치를 협의하였다. 1938년 1월엔 논산 군석면 왕전리 김익현의 집에서 오철식 조판순 어중옥 김공조등 10여명과 독립후 조선정부인 삼성묘를 학룡산에 건축할것을 협의하였다. 1939년 일경에 체포될때 태극기와 문서등이 발견되어 구류되고 41년에 독립운동을 도모한 죄로 2년 2개월형을 받고 복역하였다. 공이 가신지 오랜 세월이 지난 2010년 3.1절에 국가로부터 일신의 안위를 버리고조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한 선생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애국애족정신으로 독립운동을 한 위업을 기리어 건국포장을 포상받았다. 이러한 위훈을 추모하여 추모비건립추진위원회가 조직되고 비문을 지으니 후세에 영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