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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찰은 1945년 8월 15일 조국광복이후 전국 방방곡곡에서 발호하던 공산당에 의하여 자행된 살인, 방화, 약탈, 폭동 등을 완전진압 당시 난마와 같았던 사회혼란을 수습함으로써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에 산파역할을 다하였으며 특히 북한괴뢰도당의 불법남침으로 발발한 6.25동란중에는 국군과 더불어 조국수호성전에 참전 적구를 무찔러 호국경찰의 영명을 천추에 남기게 되었다. 여기 이곳에도 6.25동란중 조국수호전선에서 산화하신 열여섯분의 호국경찰관 영령이 고이 잠들어 계시다. 1950년 7월 충청남도 일부지역에 적의 내침이 있자 보령경찰서에서는 전투부대를 편성 관내 도서와 해안의 경비에 당하는 한편 천안 온양방면으로 침입하는 적을 무찌르기 위하여 예산과 홍성경찰서 부대의 작전을 지원하는등 적의 남진저지에 총력을 경주하였다. 7월 14일 작전상 일시 장항으로 후퇴하였던 보령 홍성 예산 경찰부대와 천안 철도 경찰대가 혼성된 부대를 보령군 주산면 금암리에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하여 7월 17일 주산방면으로 진격을 개시하였다. 정철모 총경이 지휘하던 천안철도경찰대가 선봉부대로 주산에 도착하여 전열을 정비하던중 이미 침투 잠복중이던 적 1개중대와 조우하여 치열한 공방전끝에 육박전을 전개하는등 최후의 일각까지 용전분투하며 적에게 많은 타격을 주었으나 병력과 장비의 중과부적으로 김도열 경사등 6명은 장렬하게 전사하고 정총경등 10명은 적에게 포로가 되어 은밀히 탈출계획을 추진하였으나 거사직전 적에게 발각되어 모진 고문을 당한후 7월 27일 오후 2시경 이곳에서 총살되어 조국의 수호신으로 순절하였다. 9.28수복이후 지방 우익인사들에 의하여 김경사등 6위의 유해는 주산면 야룡리 산울에 정총경등 10위의 유해는 이곳 남포면 옥서리 이연이재에 합장되었다. 그후 1956년 보령경찰서장 신필우 경감이 경찰서 전직원의 정성을 모아 봉분을 만들고 묘비를 건립하여 호국영령들의 넋을 추모하였으나 유택이 너무도 초라하여 보는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만시지탄의 감은 있으나 다행이도 선열들의 호국정신 계승발전사업을 추진중이던 안응모 도지사와 주병덕 경찰서장의 적극적인 지원과 김수진 공병선 양군수를 비롯한 지방유지들의 성원으로 그 충절과 위훈을 자손만대에 전하고자 선열경찰관합동묘소정화사업을 추진하여 주산면야룡리에 있던 6위의 묘소를 이전 합장하였으며 묘역을 확장 성역화하는 역사를 1985년 경찰의 날에 준공하게 되었다. 1985년 10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