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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대학 4.19의 넋 우리의 고순자양 여기 잠들다 꽃은 졌어도 그 뿌리는 역사와 함께 길이 존영하리라. 1962년 7월 일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생회 서울대학교 총여학생회 일동 상과대학 안승준군은 일천구백삼십팔년 오월 이십칠일 서울에서 나다. 서울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삼학년 재학 중이던 일천구백육십년 사월혁명에 나서다. 그날 사월 십구일 경무대 앞길에서 시위를 하다 경찰의 총격으로 쓰러져 오후 다섯시께 설울의대 부속병원에서 스물셋의 나이로 생을 마치다. 민주의 제단에 바친 그의 짧지만 의롭고 숭고했던 삶을 기려 동학들이 여기 한 조각 비를 세우다. 일천구백구십일년 오월 팔일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오팔회 우림 김진상 근서 법과대학 고 박동훈군의 흘린 피 위에 우리는 서 있다. 1961년 4월 19일 문리과대학 우리 문리대 학우여! 오라 그리고 보라! 그리하여 그대들 가슴에 이 끓는 맥동을 영원히 새기라. 상아탑은 진리의 탐구자요 정의의 수호자다. 비분 속에 폭발된 4월의 궐기는 이 엄숙한 대의의 극명이요 정기의 절규이었다. 불의에 항거하고 독재에 도전한 이 모두가 우리 학원에서 말없이 길러온 불타는 조국애와 투철한 정의감의 발로요 이에 따른 과감한 실천인 것이었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전국민의 불길 같은 성원이 깃들어 있었으니 소리 높여 외친 우리의 절규는 국민 총의의 집중적 표현이었다. 앞장선 학우의 가슴에 흉탄을 퍼붓던 발악을 최후로 독재는 정의와 자유의 기치 앞에 자취를 감추었으니 하늘을 지를듯 승리의 개가를 울리며 우리는 다시 내일의 민족문화 건설에 매진하련다. 그러나 그러나 가슴 아프게 애곡하노니 이 성스런 혁명전선에서 쓰러진 고 김치호 동지의 깨끗한 얼을 못내 잊을 길 없도다. 이제 이 한 조각 돌에 이 얼을 아로새겨 그 숭고한 기개를 길이길이 역사에 단명코자 전 학우의 총의로 이 기념탑을 건립하여 그 영전에 그리고 국민 앞에 드리오니 비록 억겁이 지날지라도 이 얼과 의기는 여기 영원히 살아 이으리라. 4월학생혁명 1주년 기념일에 본 기념탑 건립위원 지음 단기 4294년 4월 19일 건립 건립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생 일동 동창 일동 교수 일동 설계 및 제작자 이연갑 글쓴이 박세원 사범대학 젊은 학도 봉화를 들었으니 사랑하는 겨레여 4.19의 외침을 길이 새기라. 희생자 손중근 유재식 1990년 10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