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page


49page

해군 영흥도 전적비 1950년 6월 25일 새벽4시 북괴군이 38선 지역과 동해안으로 불법남침을 개시함에 따라 전개된 한국전쟁은 동년 8월 유엔군과 한국군이 낙동강전선에 강력한 방어진을 형성함으로써 전황이 교착되어 있었다. 이때 한국 해군은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인천 접근로의 주요 도서를 탈환하여 목표지역의 적정과 지형 등 정보를 수집하고, 상륙기동부대의 안전 항행을 보장하기 위한 적전 상륙작전(일명 李作戰)을 펼쳤다. 한국 기동함대의 702(기함 함장 중령 이희경) 701(함장 중령 최용남) 704(함장 중령 최효용) 307(정장 소령 백운기), 309(정장 소령 김상길), 310(정장 소령 김동섭), 313(정장 소령 이종철)등의 함정 승조장병으로 편성한 육전대(중대장 702함 중위 장근섭)가 함포지원하에 적전상륙작전을 감행하여 동년 8월 18일 덕적도를, 8월 20일 영흥도를 차례로 탈환하고, 8월 23일부터는 LST에 탑재하고 있던 해군 이동기지 육전대(대장 준위 한봉규)가 상륙하여 영흥도 도민들의 적극적인 협조하에 청년방위대와 함께 이 섬을 사수하였다. 한편 동년 8월 24일 영흥도를 거점으로 작전을 개시한 한국 해군 첩보부대(부대장 소령 함명수)는 9월 1일 미극동군에서 파견한 첩보팀(미국 해군 크라크 대위)과 긴밀한 협조하에 상륙목표 해안을 비롯한 인천, 서울, 수원 등 적이 장악중인 지역에서 용감하게 첩보활동을 전개하여 상륙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이 작전기간중 9월 13일 북괴군은 대대급 병력을 영흥도에 투입하여 일시 점령하였으나, 용감무쌍한 우리 해군 장병들과 청년 방위대원들이 703(함장 중령 이성호)의 필사적인 근접 함포지원 아래 적을 격퇴하였다. 이 작전은 세기에 빛나는 인천상륙작전의 전초전으로서 한국 해군이 단독으로 감행한 적전 상륙작전이었으며 이 작전이 성공함으로써 인천 접근수로의 측방위협을 제거하여 상륙기동부대의 안전항행을 보장하고 적정을 포함한 완벽한 상륙정보를 제공하여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