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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희생자 위령비 건립문. 1948년에 일어난 4.3사건은 제주 전 지역을 피로 물들였으니 공권력의 과도한 진압으로 산간 부락은 전소되고 좌.우익의 대립으로 인하여 죄 없는 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했다. 무리 마을도 예외는 아니어서, 우리의 부모였고 형제였던 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마을 안팎에서 피살되었고, 육지부 형무소까지 끌려가 수감되었다. 6.25가 일어나고, 행방불명이 된 채 무정한 시간이 흘러, 생일날을 기일로 삼아야하는 기막힌 사연을 가슴에 안고 살아온 지 어언 60년, 뒤늦게 4.3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시작되고,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기에 이르렀지만 가족을 잃고 넋 나간채 울부짖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찌 죽은 이가 살아올 수 있겠으며 뼈 속까지 사무친 상처가 아물 수 있겠는가. 4.3의 광풍이 지나가고 흩어졌던 남은 이들이 하나 둘씩 고향에 찾아들어 초막을 다시 짓고 다시 마을을 이뤄 살아가고 있지만, 이미 가버린 이 마음은 참으로 무정한 지라 이제는 점점 그 옛날의 비극이 잊혀 가는데 가신 분들의 넋은 아직도 이마을 곳곳에 머물며 있을 것임에 비록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죄 없이 희생된 그 분들을 잊지 않고자 온 마을의 정성을 모아 이곳에 위령비를 세우니 원혼들이시여, 이제 그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 고이 잠드시옵소서. 서기 2007년 12월 동회천(세미) 마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