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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글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님, 할머니, 큰누이, 작은누이 삼촌 조카 그리고 그때 함께가신 모든 분들이시여! 그해, 이 터진목 해안 모래밭 앞 절 소리는 이른 봄부터 그렇게 거칠도록 울더이다. 저 건너 광치기 큰 엉 밑으론 파도소리마저 모질더이다. 어디 그뿐이더이까, 뒷바다 조개 밭으론 전에 없던 멸치떼가 섬으로 밀려와 썩어 문드러지더이다. 그때, 밤물결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늙은 황소처럼 눈 껌벅이는 소섬머리 등배불과 까칠한 밤하는 달그림자와 간간이 스처 지나가는 갈매기 울음소리마저 그토록 차갑던 이유가 무엇인지 저희는 정말 모르겠더이다. 그해 가을, 이 터진목 앞바르 바닷가 노을은 파랗게 질려있고 순하디 순한 숨비기 나무잎새들마저 초가을 바닷바람 사이에서 덜덜덜 떨고, 거칠게 밀려오던 파도 또한 덩달아 숨죽이던 그때의 가을은 어느나라, 어느 민족의 가을이더이까. 저희는 들었습니다. 콩 볶듯 볶아대던 구구식 장총소리를, 미친개의 눈빛처럼 시퍼렇게 지나가던 징박힌 군화 소리를, 그리고 보았습니다. 아닙니다.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당신의 형과 아우와, 당신의 삼촌과 조카가 아들과 딸과 손자와 손녀와 그리고 함께 있던 이웃들이 저 건너 조개밭에 밀려와 썩어가던 멸치 떼처럼 널 부러진 채 죽어가는 것을, 이유도 모른채 끌려와 저들이 쏘아대는 총탄을 몸으로 막아내며 늙은 어미니를 구해내던 어느 이웃집 아들의 죽음도, 젖먹이 자식만은 품에 꼭꼭 껴안고 처절히 숨져가던 어느 젊은어미의 한 맺힌 죽음도, 아버지가 아들을, 아들이 아버지를,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피 도하듯 부르다가 눈을 감던 모습도 코 흘리게 어린 우리는 기어이 그 모든것 보고 말았습니다. 서럽도록 보았습니다. 그리고 미치도록 울었습니다. 당신이 남긴 빚으로 하여 팔려가던 검은 발갈소의 마지막 눈빛에서 이별의 아믚미 우엇인지 느낄 수 있어 울고, 열살 누나가 학교를 그만 둘때 현실이 얼마나 혹독한가를 알게 되어 울고, 쫒던 노역의 소년이 목이메어 더욱 더 울고 헐어터진 고무신과 맨발의 가난이 혹한의 추위마져 잊게 해서 울고 또 울던 우리가 학교 운동회 날 남들은 아버지 손을 잡고 잘도 달리는데 우리는 오로지 하늘에 뜬 한조각 구름의 손을 잡고 혼자 달릴 수밖에 없는 설움으로 눈물도 말라버려 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그날 그자리에 간밤 뉘 혼백 다녀갔는지 숨비기나무 잎에 내린 밤이슬이 눈물처럼 고였습니다. 고인 눈물이 아침 낮설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도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꺼이꺼이 울던 갈매기도 하얗게 날아오르고 거칠던 물살도 모로누어 출렁이는 오늘, 당신이 가신지 예순두해, 그 동안 변변한 표석하나 새겨놓지 못한 부끄러움이 크던 우리가, 그나마 지난 2006년부터 한해 한번 가느다란 향 줄기 지펴올리는 일이 고작 이던 우리가, 그때 가신 모든이들을 위해 이제 비로소 조그만 제단을 여기 마련했습니다. 지금, 그때 함께가신 모든 이들의 모습이 이 제단에 향처럼 피어오릅니다. 힘겹던 세월의 주름살도 향과 함께 이 제단위로 지워집니다. 미움도 원한도 모두 모두 사라집니다. 저 바다 해녀의 숨비질 소리마저 당신의 혼령인양 다가옵니다. 사랑으로 헤럼쳐 옵니다. 용서하는 마음으로 일어섭니다. 상생의 소리여 합장합니다. 찬란한 햇살처럼, 가을 하늘의 구름처럼, 이 제단 앞 반짝이는 모래알처럼... 부디 영면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