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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3월 11일 제주도 남제주군 서귀포 681번지에서 출생한 송서규 육군대령은 서귀포 중학교를 졸업하고 국가가 6.25전쟁으로 위기에 처한 때에 육군보병학교에 간부후보생 제7기로 입대 육군소위(군번 118340)로 임관하였다. 임관 이후 6.25전쟁기간에 최전선에서 소대장으로 전투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그리고 뜻한바 있어 미국 특수전학교에 지원 특수전교육을 이수하였다. 6.25전쟁이 휴전되자 전.후방부대에서 참모장교로 근무하면서 개인능력향상을 위하여 1957년 4월부터 1961년 12월까지 단국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최고회의 혁명 검찰부에 파견근무를 하고 보병학교 고등군사반에 입교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 후 다시 정훈학교 고등군사반에도 입교하여 수석으로 졸업한 우수한 두뇌를 가진 장교였다. 이후 1공수특전단에 근무 후 월남에 자유의 십자군으로 66년 9월 20일 파월 백마 제29연대 제2대대장 근무 중 67년 12월 6일 연대장으로부터 “닌다”마을에 침투한 적을 섬멸하라는 명령을 받고 작전에 투입되어 교체된지 얼마 되지 않은 제6중대가 적과의 교전에서 중대장이 부상하고 소대장이 전사하자 대대장이 헬리콥터에서 지휘하다 직접 랜딩하여 제6중대를 진두지휘, 농가에서 사격하는 베트콩을 발견, 베트콩 2명을 사살하였으나 잔적 1명의 총탄에 가슴을 맞고 전사하였으며 대대장은 죽는 순간까지 중대원들에게 “후퇴하지마라, 계속 공격하라. 승리는 눈앞에 있다.” 라며 전투를 독려한 뒤 숨을 거두었다. 출처 : 전쟁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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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송서규대령 동상 건립기 나를 따르라! 자유, 정의, 평화 고 송서규대령은 1933년 5월 11일 여산 송씨 성능의 3남3녀 중 장남으로 서귀중학교(현 서귀포 산업과학고등학교)에 재학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학병으로 자원입대하였으며, 1951년 6월 24일 육군 보병학교 갑종간부 제7기로 지원하여 동년 12월 8일 소위로 임관하였다. 임관 후 육군본부 직할 특수부대 작전참모등을 5.16군사혁명 시에는 혁명검찰부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혁명공약에 따라 군으로 복귀 후 공수특전단 대대장등을 역임하였다. 1966년 8월 백마부대 대대장으로 월남에 참전 오작교작전, 비마작적, 부루도자작전 등 많은 작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항상 부하들과 동고동락하고 앞장서 그들의 사랑과 존경을 함께 받았다. 1967년 11월 6일 귀국을 2일 남긴 상태에서 닌호아 지역에 월맹군과 베트콩이 침투하자 아직 현지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후임 대대장에게 맞기지 못하고 지휘 중 휘하 1개 중대가 늪지대에 고립되어 중대장과 소대장이 부상하는 위급한 상황에 놓이자 전투현장에서 특공조를 편성 선두에서 지휘 적을 물리치고 부하들을 구출하였으나, 자신은 집중 공격을 받아 아깝게 전사였다. 국가에서는 살신성인과 불굴의 정신을 높이 평 일 계급 특진과 함께 군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태극무공훈장을 추서 하였다. 제주가 낳은 참 군인인 송서규대령의 공적과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제주의 혼으로서 나라와 겨레의 빛이 되길 기원하고자 국가보훈처, 제주도청, 베트남참전유공자회, 갑종간부 7기 동기회와 유족이 뜻을 모아 민족의 얼이 서린 영산 한라산 자락에 명예로운 동상을 세운다. 서기 2006년 5월 6일. 베트남 참전위령탑 및 故 송서규대령 동상 건립 추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