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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왜정때 일본군이 제주도민을 ‘강제 동원’하여 구축한 도내 최대의 탄약고였으며, 해방 직후 미군에 의해서 폭파된 곳이다. 1948,49년, 1만 5천명~3만명(미군 정보자료 추정지, 제주도 의회 접수 2000년 1월 현재 약 1만 5천명)의 양민이 군경 토벌대에 의해서 학살된 ‘제주사건’(통칭 ‘4.3사건’ Red hunt')이 진정국면에 접어들 무렵,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치안국의 불법적 ‘예비검속 광풍이 몰아쳐,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경찰에 의하여 ’강제 검속‘을 당하였다. 예비검속자들 중 약 1천명(추정, 모슬포 252명; 서귀포 240~250명; 성산포 6명; 제주 500~600)이 넘는 제주인들은 당시 계엄군[육군 정보국 CIC(방첩대)와 해병대 사령부 정보과]에 의해서 아무런 법적 절차없이 한 밤중에 무참히 총살 이름 모를 산야에 암매장되거나 깊은 바다에 수장되었다. 현재까지 이곳만이 당시의 비참했던 상황을 보여줄 수 있는 제주도내의 유일한 학살터이다.